“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고 앞서 가시는데 나는 뒷짐 지고 따라간다든지
룰루랄라 노래하고 춤추며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기는 지되 남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며 자기 십자가를 지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키레네의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실은 주님께서 우리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이 아닐까요?
어렸을 적, 아니 중학교 때이니 그리 어리지도 않았을 때입니다.
아주 더운 여름에 학교에서 차를 타고 돌아오던 저는
무심코 차창 밖을 보다가 오이, 호박, 감자, 옥수수 등
밭에서 난 것들을 한광주리 가득 이고 가시는 어머니를 봤습니다.
집이 가난하기에 저도 보통 때는 걸어서 20리 길을 통학하였는데
그날은 너무 더워서 그깟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차타고 돌아오는데
어머니는 그 무거운 것 이고 벌개진 얼굴로 걸어가시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마련하신 돈으로 저는 차를 타고 통학을 한 것이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저를 이고 가시는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도저히 차를 타고 통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갓난아이도 어린아이도 아니니
제가 돈 벌어서 가든지 아니면 걸어서 가든지 해야 마땅하지요.
그런데 그때 제가 돈을 벌거나 제 책가방 들고 통학한다 하여
제가 어머니 짐을 덜어드린다고 할 수 있나요?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
사랑 때문에 제가 져야 할 십자가 대신 지신 어머니께
나는 원치도 않았는데 당신이 낳으셨으니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당신이 지는 게 마땅하다고 한다면 그건 철부지나 못된 놈이 하는 짓이지요.
그렇습니다.
내 십자가는 내가 져야 합니다.
내 십자가를 주님께 미뤄서는 안 되고,
내 십자가를 다른 이의 거라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렇다면 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사실은 문제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많은 경우 내 십자가를 내 거 아니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관구장일 때 저는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어린 저를 관구장으로 뽑아 그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는
제가 어떤 책임을 맡기면 나누어지거나 자기가 져야 할 거라 생각지 않고
왜 나한테 이렇게 무거운 짐을 맡기느냐는 식으로 말하거나
그것은 자기가 져야 할 짐이 아니라고 하는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짐이나 십자가는 힘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는 것이고,
힘만큼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만큼 지는 것입니다.
아니, 힘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지는 것이고,
힘만큼이 아니라 사랑의 힘만큼 지는 거라고 해야 하겠지요.
사랑치 않으면 별별 이유를 대며 자기 짐을 자기 것 아니라고 합니다.
사랑을 하면?
다른 사람의 짐, 다른 이의 십자가까지 내 것이라고 하지요. 주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