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요약정리를 하면
빵에는 먹고도 죽는 빵과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되는 빵이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당신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의 빵이시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
다시 말해서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지요.
실제로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양식이 어디 있습니까?
땅에서 수확한 양식이라도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리를 하면 모든 양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이 세상 살 때 먹으라고 주시는, 지상의 양식과
영원히 살고자 할 때 먹어야 하는, 천상의 양식이 있다는 거지요.
그럼에도 참으로 많은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양식은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무도한 사람도 있고,
자기의 양식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믿기는 하지만
지상의 양식만을 주십사고 청하는 딱한 신자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면서 Wellbeing을 위한 건강식품에는 많은 신경을 쓰는데
영원한 생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wellbeing을 위한 분일뿐이라는 것인가요?
불로초를 구한 진시황보다도 영생에 대한 관심이 없는 신자들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우리는 하느님을 왜 믿는 것입니까?
이 세상사는 동안만 필요한 하느님으로서 믿는 것입니까?
어제는 국가에서 받으라는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어제는 성체조배를 하다가 아주 강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영원을 산다는 사람이 이런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점 생각이 발전하였던 것이지요.
영원이라는 것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영원>이 객관적으로 있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없었으면 좋겠다.
영원한 지옥은 말할 것도 없고 영원한 천당도 없으면 좋겠다.
영원한 천당도 왠지 지루하고 지겨울 것 같으니 없었으면 좋겠다.
살만치 살았으니 이 정도에서 깔끔하게 죽고,
그런 다음의 <나>라는 존재는 소멸되어 더 이상 없어도 좋겠다.
그런데 이것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저의 진심이고 진정한 바람일까요?
저를 깊이 들여다보니 이 세상살이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는
저의 고차원적인 교만과 일시적인 허무주의가 교묘히 섞여있는 거였고,
영원을 사는 것과 일시를 사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선택을 회피하려는, 더 정확히 표현하면
영원의 문제를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저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 번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현세와 영원 사이에서 어찌 보면 어정쩡한 삶을 우리가 살고 있는데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지상의 음식과 천상의 음식 중에서 어떤 음식을 취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성인들 중에는 이런 선택을 극단적으로 한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을 때까지 성체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분들이지요.
그중에서 성 니콜라스는 스위스의 주보성인인데 5남4녀의 아버지이자,
시민 지도자, 군인, 애국자로서 세상살이에 아주 충실하였었지만
50세가 되던 해 아내와 합의하에 은수자로 살기로 한 다음
20년 동안 성체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았던 분이시지요.
이때 그는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주님, 저를 당신과 가깝게 하는 모든 것을 주소서.
주님, 저를 저 자신에게서 데려가시고 저를 당신께 바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