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을 읽다가 보니 이런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깨어있어라.”
“명심하여라.”
“행복하여라.”
그리고 이렇게 오늘 복음이 요약되었습니다.
주님께 깨어있고,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면
우리는 행복한 종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깨어있는 것도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타인의 요청에 깨어있는 사랑의 차원이 있고,
시대의 흐름에 깨어있는 사회적 차원이 있지요.
그런데 이런 것에도 우리는 분명 깨어있어야 하지만
오늘 주님께서는 종인 우리는 주인님께 깨어있고,
주인님의 오심을 깨어 있다가 맞이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에 우리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오시기만 한다면 당연히 깨어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께 깨어있지 않음은
주님께서 오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오시지 않은 것입니까?
내가 깨어있지 않은 것입니까?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해보십시다.
주님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오실 수 없어서 오시지 않은 겁니까?
오실 마음, 곧 사랑이 없어서 오시지 않은 것입니까?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고 능력과 사랑의 주님이시고,
그래서 오실 수 있고 오시는 분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지요.
주님께서는 오셨고, 와 계시고, 오실 분이시지지만
단지 어떻게 오시는지 그것이 그때마다 다를 뿐이고,
그래서 우리는 깨어있어야만 그분의 오심을 알아채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 주님은 혼자 오시지 않으십니다.
바람과 함께 오시기도 하고,
손님과 함께 오시기도 하고
고통과 함께 오시기도 하고,
복음과 함께 오시기도 하고,
사건을 통해 오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언제 오실지 우리가 모르고,
생각지도 않을 때 오신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하십니다.
바람과 함께 오시리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바람과 함께 오시고,
고통 중에는 고통스럽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고통과 함께 오신다는 거지요.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자나 깨나 주님 생각해야겠지만 이렇게도 해야 할 겁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사람들에게 깨어있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주님께 깨어있는 것 말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완성하여 진정 행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