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수치를 당하지 않는 사람.
이번에는 이것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부연하여 오늘 말씀을 요약하였습니다.
수치를 주는 사람이 없어서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것으로 할 얘기는 다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너무 매정한 것 같아 친절하게 더 풀어서 얘기를 할까 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준다고 다 받나?>
상처를 받았다고 종종 말합니다.
그런데 준다고 상처까지 받습니까?
줘도 싫을 때는 안 받으면 되지요.
그러니 싫은데도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물리칠 수 없어서 받는 거며, 물리칠 힘이 없어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수치와 모욕을 줘도 받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경우는 받지 않는 것과 당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야겠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치를 받더라도 당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수난이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수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수난을 당하셨다고 하면 안 되지요.
주님께서는 수난을 억지로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들이시고 겪으셨습니다.
물론 사랑 때문에 받아들이시고, 사랑으로 받아들이셨고요.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거나 수난을 당하지 않는 방법은
원해서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처음에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주님께서 수난하시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것이 수난의 사랑을 방해한 것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난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려는
하느님의 심오한 뜻과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되고요.
그런데 이렇게 수난을 거부하는 것이 사탄의 짓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사탄의 짓입니다.
사탄이 되는 것 참으로 쉽습니다.
사랑하다가 사탄이 됩니다.
사랑하다가 사랑을 거부하거나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수난을 거부하는 것이 사탄적인 사랑이라는 얘기인 거지요.
나도 베드로 사도와 같은 사람이 아닌지,
나도 베드로 사도와 같은 사랑을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