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계셨다.”
아드님의 십자가 곁에 성모님이 계셨으니
아드님의 고통에 성모님이 함께 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미사의 본기도도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 십자가에 높이 달린 아드님 곁에 서서, 성모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리스도와 함께 수난하고 부활하게 하소서.”
그러므로 오늘 축일의 중요한 의미는 <함께>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함께 나누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함께>는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실 때
함께 있던 제자들이 수난의 때는 모두 도망친 것과 분명 다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늘 함께 계셨고,
존재적으로 함께 계실 뿐 아니라 고통도 함께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 아드님의 고통을 보고 같이 아파하실 뿐 아니라
아드님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셨다는 면에서 함께입니다.
말하자면 아드님의 고민을 어머니도 같이 고민하고,
아드님의 걱정을 어머니도 같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플 때 같이 아파하는 것은 모든 어머니들이 하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도 저를 사랑하시고 그래서 제가 힘들어 하면
저보다 더 힘들어 하셨고 고통스러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 대한 저의 어머니의 사랑과
저의 고통을 함께 하심은 여기까지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의를 위해 일하다가 잘못될까봐 그것을 반대하셨고,
북한 일 하다가 잘못 될까봐 그런 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도 저의 어머니와 같이
그저 자식의 고통에 대해서만 걱정하시고 함께 하셨다면
그것은 저의 어머니나 보통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우리가 높이 기릴 필요가 없을 겁니다.
우리가 기리는 것은 인류 구원을 위한 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모 마리아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는 사형을 앞둔 안중근 의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하지요.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으라."
그러므로 인류 구원의 고통을 아드님과 함께 나누신 어머니 마리아는
우리 모두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 모두의 고통도 함께 나누실 것이고,
요즘으로 치면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성모 성탄 축일, 세월호 미사 때 이런 강론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탄생하셨지만
우리의 어머니로도 탄생하신 것이고,
그래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머니로서 당신 가슴에 묻으실 것이며,
희생자들의 어머니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같은 어머니로서
함께 아파하실 거라고 말입니다.
아드님의 고통뿐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
곧 우리 모두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시는 어머니 마리아의 사랑을
가슴 따듯하게 느끼며 그것을 우러르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처절한 십자가상의 고통중에 예수님께서 그 밑에 서 계신 어머님께 요한을 가리키며
어머니, 당신의 아들입니다.
요한에게 어머님을 가리키며 너의 어머니시다. 하신 장면을 보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결정적 순간에 저희 모두에게 주신
어머님이 계셨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