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오늘 디모테오서를 읽으면서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의 사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아시다시피 디모테오서는 사목 서간이고,
디모테오는 하느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목자였듯이
저도 하느님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목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본당 사목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하느님 교회 밖의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 안의 사람이고, 더욱이 사제요, 수도자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올바른 처신은 무엇보다도
이런 저의 정체성을 갖고서 처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은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그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을 무엇 때문에 하느냐는 뜻이지요.
그런데 저나 여러분 가운데 그 당연한 정체성을
잃거나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공인인데 사인처럼 사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한 인간이고,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도 개인이지만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할 곳과 시간에는 개인이 아닌 거지요.
그래서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일곱 시간 동안이나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모를 때 비판을 하고
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이 비상사태 때 골프를 치면 비판을 하지요.
이처럼 저나 사제들이 필요할 때는 필요할 때는
수도복이나 사제복을 입고 수도자나 신부로 행세하지만
정작 수도자와 사제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때는
자기의 교회적 신원을 망각하고 개인으로 처신하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너무 자기중심적인 처신과 교회 운영입니다.
오늘 디모테오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집에는 하느님이 살아계셔야 하고,
하느님의 집은 진리의 기둥이요 기초여야 하는데
하느님의 집인 교회가 하느님은 살아계시지 않고
사제나 수도자가 왕처럼 군림하고 있고
진리의 굳건한 기둥과 기초이기는커녕
자기 말이 진리이고 자기 말대로 하라고 하곤 하지요.
하느님도 없고 신자들도 없는 이런 자기중심적인 처신과 교회운영은
말할 것도 없이 지독한 교만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렇게 교만할 때 오늘 주님께서 맹비난하시듯
하느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신자들의 희노애락에 같이 해야 할 사제와 수도자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울지 않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어겨가면서까지 고압적으로 교회를 이끌 것입니다.
귓전을 간질이는 그런 얘기는 잘 듣지만
정작 들어야 할 말은 듣지 않고 요구만 하는 저는 아닌지
아프지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입니다.
어떤 때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노라면 이러다가 소돔과 고모라 처럼
이 세상이 끝장나는 것 아닌가......라는 위기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12사도라는
소수의 정예부대로 시작하셨다는데 저는 위로를 받고,
신부님의 묵상글을 읽으면서 소수의 남은 자는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에 힘입어
나부터 회칠한 무덤에서 나와야겠다는 용기를 내고......결심을 하게 되는 이 순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