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불의를 잡고 있는 멍에를 끊으라는 말씀이다. 나쁜 습관과 관계를 정리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단식한다면서 이웃과 다투어서는 안 될 일이다(제1독서). 단식은 음식을 끊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의 절제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맺는 관계다.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고자 단식하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네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만?“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다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빛의 생활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러기에 적선과 자선의 생활을 권고합니다. 베풀지 않고 받으려 한다면 신앙생활은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누가 거지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있으면서도 달라고 하면 그 역시 거지 근성을 지닌 것이 됩니다.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희생하며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선이 되고 자선이 됩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감싼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생활이 빛의 생활이기에 악한 기운의 접근을 막아 준다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식에게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의 앞날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무엇이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을 밝게 하는 자선과 적선은 소홀히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선을 베풀고 그러한 목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면, 어찌 주님께서 축복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자선은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알게 하면 자랑이 됩니다. 모르게 해야 은총을 모셔 올 수 있습니다. 단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만이 아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면 그만큼 하늘의 힘이 줄어듭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사람보다 주님 앞에서 단식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실천해야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불의를 잡고 있는 멍에를 끊으라는 말씀이다. 나쁜 습관과 관계를 정리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단식한다면서 이웃과 다투어서는 안 될 일이다(제1독서). 단식은 음식을 끊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의 절제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맺는 관계다.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고자 단식하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1-9ㄴ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목청껏 소리쳐라, 망설이지 마라. 나팔처럼 네 목소리를 높여라. 네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야곱 집안에 그들의 죄악을 알려라. 2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자기 하느님의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 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들을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3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4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하여서는 안 된다.
5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7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9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만?“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을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5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다면 그 이유가 있습니다. 빛의 생활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러기에 적선과 자선의 생활을 권고합니다. 베풀지 않고 받으려 한다면 신앙생활은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누가 거지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있으면서도 달라고 하면 그 역시 거지 근성을 지닌 것이 됩니다.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희생하며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적선이 되고 자선이 됩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감싼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생활이 빛의 생활이기에 악한 기운의 접근을 막아 준다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식에게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의 앞날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무엇이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을 밝게 하는 자선과 적선은 소홀히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선을 베풀고 그러한 목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면, 어찌 주님께서 축복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자선은 남모르게 해야 합니다. 알게 하면 자랑이 됩니다. 모르게 해야 은총을 모셔 올 수 있습니다. 단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만이 아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면 그만큼 하늘의 힘이 줄어듭니다. 이번 사순 시기에는 사람보다 주님 앞에서 단식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실천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