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몇 해 전부터 저는 제가 변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변하신 하느님과 달리 유한한 존재이니 변하는 게 당연하지만

저와 프란치스코와의 관계가 변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하는 것이 다 나쁘지 않고 좋게 변하는 것은 좋은 건데

안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닐까?

남녀 간의 사랑에 권태기라는 것이 있다는데

나도 권태기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그것은 분명합니다.

10, 20, 30대처럼 프란치스코를 향한 열망이 강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를 알고자 하는 열망,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하는 열망,

프란치스코를 따르고자 하는 열망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주 프란치스코를 바라보고,

아주 강한 시선으로 프란치스코를 바라보던 저의 시선이

점차 약해지고 뜸해진 것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한 저를 반성키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당연한 것이라고 변호하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사실 젊었을 때의 저의 프란치스칸 열망에는 불순물이 많았습니다.

욕심이라는 불순물이 섞인 열망이었던 것입니다.

마른 장작보다는 생나무의 불길이 더 강하고,

애욕이 순수한 사랑보다 더 강한 것처럼 보이듯

욕심이 섞인 열망이 참으로 강해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의 열망은 욕심이라는 불순물이 빠지고

노년의 부부의 담담한 사랑처럼 바뀐 것도 같습니다.

 

노년의 부부는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 하고

알려고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잘 알고 있고,

서로 맞추고 닮으려고 애쓸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맞춰져있고 닮아있으며,

놓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안에 깊이 들어와 있지요.

 

또 다른 차원에서도 저의 변화를 좋게 보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를 향한 시선이 전만 못한 것 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느님,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로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프란치스코를 우상적으로 바라보던 것이

이제는 프란치스코가 바라보는 하느님을 보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사랑이

같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랑이듯이 말입니다.

 

물론 제가 성녀 글라라만큼 프란치스코를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성녀 글라라처럼 프란치스코가 보는 것을 같이 보는 것은 맞습니다.

 

불교의 우화 중에 이런 것이 있지요.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물이 너무 불어나 아주 위험했습니다.

여러 차례 그냥 건너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고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타고 건널 것을 찾는데 마침 배를 발견하였고,

그 배 덕분에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사람은 강을 건너고 나서도

그 배가 너무 고마워 버리지 못하고 지고 계속 갔습니다.

배는 건너기까지만 필요한 것인데 계속 배에 집착했던 것이지요.

 

사실 프란치스코나 프란치스칸 영성도 하나의 배일뿐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면 버려야 합니다.

도착지에 도착하면 약도가 필요 없고 그래서 버리듯 말입니다.

 

성녀 글라라는 이렇게 유언에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이 되어주셨는데

성 프란치스코가 그 길을 알려주었다고 말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알려주는 약도입니다.

약도는 길을 찾게 하고, 옳게 가게 하기에 필요하고 소중하지요.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 소중합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홈페이지 김레오나르도김찬선 2015.10.04 06:47:05
    프란치스칸들과 프란치스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축하드리며, 하느님께서 프란치스코에게 주셨던 그 축복과 은총을 여러분 모두에게 똑같이 내려주시기를 바라고, 여러분은 그 축복과 은총으로 충만해지시기를 빕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9Oct

    연중 30주 목요일-하느님의 사랑도 우리가 믿는만큼 힘이 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리스도 사랑의 힘이 워낙 세기에 아무 것도 갈라놓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마치...
    Date2015.10.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800
    Read More
  2. No Image 28Oct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결합된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결합을 잘 이루는 사람일까? 우리 공동체는 잘 결합된 공동체일...
    Date2015.10.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96
    Read More
  3. No Image 27Oct

    연중 30주 화요일-우리와 함께 탄식하고 기다리는 피조물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르침, 아니 오늘날에 더욱 유효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우리로 인해 탄...
    Date2015.10.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88
    Read More
  4. No Image 26Oct

    연중 30주 월요일-두려울 것 없는 아버지의 자녀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트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를 외치는 것입니다.”(8,14-5)   지난 토요일, 우리는 누가 우리를 구...
    Date2015.10.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26
    Read More
  5. No Image 25Oct

    연중 제 30 주일-자비를 구하는 사람은 누구?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누가 자비를 구할까? 말할 것도 없이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 복음의 바르티매오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자비가 필요 없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자비가 필요 없는 사람...
    Date2015.10.2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49
    Read More
  6. No Image 24Oct

    연중 29주 토요일-누가 우리를 구해줄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로마8,2)   오늘 로마서의 말씀은 어제 로마서 7장 27절의 말씀, 곧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
    Date2015.10.2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257
    Read More
  7. No Image 23Oct

    연중 29주 금요일-원하지 않는 나를 어떻게?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7,19)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면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
    Date2015.10.2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70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55 856 857 858 859 860 861 862 863 864 ... 1321 Next ›
/ 132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