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이라 하지만, 손바닥만 하지도 않을 뿐더러 서울에서도 중심지에 속한 '정동'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결코 작은 면적은 아닌 것이다. 작다는 표현은 높은 빌딩들이나 넓은 면적들에 비해 그저 작은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보잘것 없어 보이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원이나마 대할 때 마다 참으로 느끼는 바가 많다.
여기에 관련된 생명들만 하더라도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때로는 의외의 새들이나 동물들도 목격이 되니까...몇 번 만날 수 있었던 쪽재비만 해도 시골에서조차 어렵사리 발견되는 게 아니던가!
갸들이 있어선지 여기 정원엔 쥐들을 볼 수가 없다. 요즘엔 가끔 텃밭의 방울 토마토나 오이, 애호박, 고추를 건사하려 들여다 보느라면, 새앙쥐처럼 잽싸게 부스럭거리며 지나가는 존재가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처음 대하는 작은 새라, 얼핏 보면 어린 쥐로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틈만 나면 정원에서 소일하게 되는 데, 거기엔 사소한 일같으면서도 허투루 보낼 시간이 아니게끔 몰두해 버리고 마니, 결국 소중한 나 만의 침잠이 되어 더없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 정원에 날아드는 벌이나 나비의 종류도 크고 작은 종류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지!
며칠 전 새벽녘엔 왕벌같기도 하고 호박벌같기도 한 것이 부지런히 날개짓을 하며 이꽃저꽃을 쉴새없이 옮겨다는 거였다. 저것의 정확한 정체가 도대체 뭘까, 한참을 눈길로 쫓다가, 언뜻 무릎을 치며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듣기만 하던 '벌새'였던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너무 빠른 날개짓 동작에 그만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최근엔 내 나름대로 나의 중정원이라 여기는 경희궁 내에서 산책을 하다 귀한 '오색 딱다구리'를 만난 적이 있다. 어쩌다 그냥 딱다구리 소리가 나 그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보통 딱다구리인 줄 알게 되지만, 희귀한 오색 딱다구리가 그렇듯 복잡다단한 도심지에 출몰하리라곤 예상 밖이었으니까.
그리고보니 숲 속이나 산 속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까지 6년간 산 속 성거산에서 지낸 경험이 새삼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성거산만 하더라도 거기에 살고있는 생명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많은 대가족들이 먹고 자고 싸며 지내는 반복된 일상이면서도, 그 산 속에선 신기하게도 그들이 유기한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깨끗이 정화된 산 속 공기하며 신선한 바람,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나 가을에 들리는 낙엽 소리...게다가 발원지부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청량한 물소리는 어떠한가!
반면에 유일무이하게 인간 만이 어디에서 지내건 쓰레기를 남기는 존재려니, 이 땅이나 바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몹쓸 파괴적 생명체가 바로 우리들 인간인 게다. 작다란 생명들은 물론 아프리카 거대한 코끼리나 사자, 호랑이같은 맹수들이 살다가 죽은들, 어디 그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기는 법이 있는가. 죽음 즉시 미생물이나 작은 곤충들의 먹거리가 되어 즉시 분해되고 땅으로 자연스럽게 귀소하지 않던가.
유독 사람들만 죽음 이후에도 땅에 신선한 존재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묘지, 묘비명...이라는 것들을 세우고 남겨 자못 이름 석자나 길이길이 후세에 남기려 안간 애를 쓰는 안스러운 모습! 하기사 살아 생전 쓰레기를 켜켜이 남기는 것은 물론,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비해 숱한 묘지가 차지한 면적만 해도 골칫덩어리가 되어 그 대안으로 납골묘가 좋으니 안좋으니 의견이 분분한 현실이 아니던가!
그렇다. 이 세상, 지구라는 땅덩어리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 만을 위해서 창조하신 건 아니라, 무생물로 여기는 돌이나 바위...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골고루 분여받은 터요 함께 공존해야 할 이유가 아닌가. 그리고보니 인간은 자연의 일원일 뿐 주인 행세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이 지구를 마음대로 이용해도 좋다는 독단적인 자만은 너무나 잘못된 인식이다. 어찌보면 물 한 방울이나 풀 한 포기, 석양에 그물을 치는 거미 한 마리도...우리 인간의 생명 못지않게 각기 소중한 생명체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거창한 위의 예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정원에 거처하고 지나가는 무수한 생명들을 대하면 참으로 소중함을 느끼고 경외심이 울어나 하마 함부로 대할까 참으로 조심스러워 진다. 피어나는 이런저런 꽃 한 송이라도 그럴 적마다 얼마나 감탄스러운지! 가을을 알리는 풀 벌레 한 마리의 소리라도 우리 집 정원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는 그 귀한 경종에 쫑끗 귀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순수한 모습이나 소리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건, 사람들이 창작해 내는 그 어떤 훌륭하다는 자만의 작품보다도 뒤지지 않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배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