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로마8,2)
오늘 로마서의 말씀은 어제 로마서 7장 27절의 말씀, 곧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에 대한 답으로서
죄와 죽음의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법이 우리를 구해준다는 말씀입니다.
육의 지배하에 우리가 있으면 아무리 율법을 가지고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해도 뭐가 죄인지 알게 하고,
법에서 빠져나가는 법만 알게 할 뿐
죄의 죽음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그 이유를 바오로 사도는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8,6)
“하느님을 적대시하는 것”(8,7)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면서
이런 육의 사람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8,7)고 단언합니다.
그러니까 육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율법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강도의 손에 칼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칼이 의사나 어머니나 요리사의 손에 있게 되면
그 칼은 죽어가는 병자를 살리고 가족이나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만
깡패나 강도는 그 같은 칼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 쓰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율법이든 국가법이든 법이란
칼이 찌르고, 자르고, 가르듯 사람을 찌르고, 가르고, 나뉘게 합니다.
그것은 법이란 것이 본래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시비를 가리는 것인데
육의 사람, 불의한 사람, 범법자는 하느님의 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고, 자기중심으로 편을 가릅니다.
보십시오.
지금 정치권의 사람들,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권력을 잡을 때부터 이미 법을 어겨가며 불의하게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불의하게, 그러니까 법에 어긋나게 행사하며
법을 잘 알기에 자기들의 불의는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
자기들의 불의를 고발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범법자로 몹니다.
그러니까 육의 사람, 불의한 사람은 태생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태어났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불법으로 권력을 잡았기에 불법을 행사하고,
불의하게 권력을 잡았기에 불의를 감추려 또 불의를 저지르며
죽이면서 권력을 잡았기에 법의 이름으로 반대자를 죽입니다.
그렇다면 태생이 그런 사람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육의 사람은 죽어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육의 사람이라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육의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육이 죽는 것이며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 사람 안에 있는 육의 영이 죽고,
그 사람 안에 주님의 영이 머무시고, 사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죽은 피 빼어내고 건강한 피 수혈하는 것처럼
육의 영은 몰아내고 주님의 영을 모시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결론적으로 얘기합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