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532 추천 수 2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트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를 외치는 것입니다.”(8,14-5)

 

지난 토요일, 우리는 누가 우리를 구해주는지 봤고,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구해주신다는 것도 봤으며,

오늘, 주님의 성령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봅니다.

말하자면 구원의 내용으로서 구원받은 사람이 어찌되는지 보는 겁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녀란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바오로는 말합니다.

종살이의 영이란 악령이지 성령이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 악령은 두려움을 이용하여 인간을 자기 종, 노예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악령의 덫이며

두려움을 지닌 사람은 악령의 먹잇감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은 다양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상처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등.

 

이런 것들이 자기한테 닥칠까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인데

두려움이란 원치 않는 것, 싫어하는 것이며,

싫고 원치 않음이 웬만하지 않고 너무도 클 때 두려워하는 것이기에

그런 것들이 닥칠까봐 벽을 쌓아 방어하거나 아예 단절을 시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도 싫은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에 의해 우리의 안정()을 깨질까봐 불안해하는 것이며,

이런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벽을 쌓고 방어를 하고 차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강하고 굳건하다면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이런 것 때문에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런 것이 내게 닥치지 않도록 벽도 쌓지 않고, 방어나 차단도 않겠지요.

 

,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짜 강해야 합니다.

벽을 쌓거나 방어하는 것은 약하기에 그러는 것이니

벽을 쌓을 필요도 방어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 강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힘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고 하였지요.

그리고 인간적인 사랑도 그런 힘이 있는데 성령의 사랑은

겁쟁이 사도들로 하여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게 했던 것처럼 더욱 더 그럴 힘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움의 종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대한 사랑 때문에도 두려움이 없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도 오늘, 성령의 힘으로

아무 두려움 없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2Feb

    주님 봉헌 축일-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봉헌하셨다.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그런데 이 축일에서 주어는 누구입니까? 주님 자신이십니까, 아버지 하느님이십니까, 아니면 성모님이십니까?   전례적인 의미는 요셉과 마...
    Date2016.0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88
    Read More
  2. No Image 01Feb

    연중 4주 월요일-생활관상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생활관상>   우리는 오늘 또 다윗의 놀라운 신앙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행위를 그저 인간의 행위로만 보지 않...
    Date2016.0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75
    Read More
  3. No Image 31Jan

    연중 제4주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아야 예수님을 인정하겠다는 마음이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믿는 마음...
    Date2016.01.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600
    Read More
  4. No Image 31Jan

    연중 제 4 주일-덮어줄까, 까발릴까?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예언자는 하기 싫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하도록 배속에서부터 성별되고 파견된 존재가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그러므로 우...
    Date2016.01.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166
    Read More
  5. No Image 30Jan

    연중 3주 토요일-이미 지은 죄보다 큰 죄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어제 강론 끝에 말씀드린 대로 나단 예언자는 다윗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싫고 괴롭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예언자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것보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더 싫겠...
    Date2016.01.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90
    Read More
  6. No Image 29Jan

    연중 3주 금요일-죄가 죄를 부른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죄가 죄를 부른다. 이것을 저는 오늘 강론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끊어버리지 않는 한 무릇 모든 죄는 또 다른 죄, ...
    Date2016.01.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842
    Read More
  7. No Image 28Jan

    연중 3주 목요일-모양대로, 크기대로 담기는 하느님의 사랑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시편 8편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5절)   ...
    Date2016.01.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5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64 865 866 867 868 869 870 871 872 873 ... 1343 Next ›
/ 134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