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축일의 의미를 묵상하며 감사송을 보았습니다.
“나약한 저희도 성인들의 도움과 모범으로 힘을 얻어, 활기찬 믿음으로
영원한 고향을 향하여 나그넷길을 서두르고 있나이다.
그들의 모범은 나약한 저희에게 힘이 되나이다.”
이 감사송은 우리가 하늘 길을 가는 데에
성인들의 도움과 모범이 힘이 된다고 하는데
옛날 저의 경우 힘을 얻기는커녕 성인들로 인해 좌절을 하곤 했습니다.
기도에 깊이 들어가 탈혼까지 하는 성인을 보며
나의 기도는 기도도 아니라고 함으로써 기도의 맛을 잃었었고,
희생극기를 극단적으로 하는 성인들을 보며
먹는 것, 자는 것이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고,
사는 것이 다 죄라는 아주 부정적인 생각에 젖어 살곤 했지요.
그래서 성인들은 저의 죄스러움을 들춰내는 부담스런 존재요,
도움, 모범, 도전, 자극이 되기보다는 기를 꺾는 존재였습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성인은 저에게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렇게 살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지.
빛으로 나아갈수록 더러움이 더 잘 드러나듯,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욱 짙듯 저의 죄스러움만 들추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제 전철을 타고 어디를 가다가 앞에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키가 작아도 괜찮은 지금의 나,
못 생겨도 괜찮은 지금의 나,
훌륭하지 않아도 괜찮은 지금의 나,
죄를 지었어도 자학하지 않는 지금의 내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때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성인들에 대한 생각도 과거의 완벽한 존재, 초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 행복한 사람으로 인간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 독서의 말씀이 아주 마음에 따듯하게 와 닿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중에 두 가지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과연>과 <이제>입니다.
<과연果然>이란 무슨 뜻입니까??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으로 그렀다는 뜻이지요.
<이제>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는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말로는 하느님의 자녀였지만
이제부터는 실제로,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적 한 번도 없었지만
하느님 자녀로서의 행복을 이제 느끼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하느님 사랑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이제라도 알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성인다운 삶을 시작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