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로마 12,5)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론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 말씀을 새겨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점만을 생각했는데
지체들끼리도 서로서로 지체라는 것입니다.
지체인 눈이 멀면 지체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 전체가 어두워지고 발도 고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발이 안 좋으면 몸 전체가 움직일 수 없을뿐더러
눈도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보러갈 수 없겠지요.
그제 마라톤을 뛰었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마라톤을 뛸 때마다 감동적인 인간승리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시각장애인의 마라톤 도전입니다.
이번에도 시각장애인 여러분이 도전을 하였는데 그 옆에는 항상
장애인의 눈을 대신해주는 ‘Happy Leg’라는 도우미들이 있습니다.
뛸 수 없는 장애인들을 뛰게 하는 행복한 발들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이 마라톤을 보면서 눈이 멀쩡한 사람도 겁내는 마라톤에
이들은 왜 도전을 하고, 도우미들은 왜 돕는지 우리는 생각게 됩니다.
우선 시각장애인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볼 수 없는 장애 그 자체 때문에
다른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레 많은 것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곤 했을 것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길을 어떻게 가고,
어떤 위험이 눈앞에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발걸음을 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시각장애인의 마라톤은
보지 못하니 뛸 수 없다는 그 부정적인 생각을 뛰어넘겠다는 도전이요,
무엇보다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마음의 장애인 두려움에 대한 도전이며
이 도전을 통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을 이겨낸 인간 승리인 겁니다.
그러나 이들이 승리한 것이지만 도우미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뭘 하고파도 도전의지가 생기지 않을 것이고,
도전의지가 강하게 있더라도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우미들은 장애인들로 하여금 하고픈 것을
할 마음도 갖게 하고, 할 수 있게도 하는 사람들이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일뿐 아니라
남도 사랑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인생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정리를 하면 이렇습니다.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지만 발이 있어도 발걸음을 뗄 수도 없습니다.
발이 없으면 갈 수 없지만 눈이 있어도 가서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은 보게 하지만 가게도 하는 것이며
발은 가게 하지만 가서 보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이 보기만 하면 자기의 기능을 수행할 뿐이지만
발로 하여금 가게 할 때는 사랑을 수행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눈은 의미를 지니고 행복을 얻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는 각기 다른 은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발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귀의 은사를, 어떤 사람은 입의 은사를.
그리고 은사는 기능을 수행하라고만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라고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