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나는 진정 나의 주인이어야 합니다.
적어도 내 삶의 주인이어야 합니다.
죄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고,
일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며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은 또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치 않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미성숙한 자기중심주의와 무엇이 다를까요?
어릴 때, 아니 꽤 나이 먹어서까지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자기 스스로 뭘 결정치 못하고 하라는 것만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눈치 보느라 하지 못하다가
나이를 먹어 자기가 잘못 산 것을 알고 난 다음
그렇게 산 것이 너무 억울하기 때문인지
그 반작용으로 부러 막가는 행동을 하곤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이것은 진정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자기 좋을 대로 하는 것이 자기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하는 것이 주인이 되는 것임을.
그렇지만 신앙인인 우리는 이것도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인간적으로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일 뿐이지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아주 강하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해서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14,7)
그러므로 신앙인인 우리는 내가 내 주인이 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나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 하는 것이고,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만 그러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의 주인 되시는 것, 그래서 내가
내 주인이 되지 않는 것에는 다른 차원도 있습니다.
비단 주님이 내 안에서만 주인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주인이 되시는 것이고
당연히 내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 대신 내가 나의 주인일 뿐 아니라
하느님 대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주인이 되어
어떤 때는 형제들을 심판하고, 형제들을 업신여깁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심하게 나무랍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14,10)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진정 온 땅의 주인이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온 땅의 주인이 되시도록 우리가 해야 할 몫도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내 소유로 삼지 않고 하느님 소유로 돌려드리는 것이고,
그전에 나부터 하느님을 나의 주인, 나의 주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는다.’고
바오로 사도처럼 오늘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