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15,19)
처음 있는 일은 아니고 아주 간혹 그런 적이 있긴 했지만
어제 새벽에 일어났을 때도 왠지 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우울하고 그런 새벽의 눈뜸과 시작 말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한참 생각을 해보니
그제 선교 위원회 회의를 한 여파랄까 후과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저께 저희는 관구의 여러 선교 현안들에 대해 논의했고
특히 중국 선교의 방향과 방법들에 대해서 논의했는데
제 안에 끊임없이 이는 것이 바로 제가 하려는 중국선교가
저의 고집인지 하느님의 뜻인지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이렇게 끊임없는 의구심이 제 안에 있는 것은
중국선교가 북한선교 다음으로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표시이고,
중국선교가 북한선교 못지않게 어렵다는 표시이겠지요.
그러니 만큼 지나친 자신감으로 하느님 뜻과 다르게 일을 추진하는 것보다
이렇게 계속 의구심을 가지고 하느님 뜻을 식별하는 것이
저처럼 교만하고 두려움 없이 일을 잘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거지만
이런 경우가 드문 저에게 이런 의구심은 낯설고 불안한 거지요.
이런 요즘의 저이기에 오늘 바오로 사도의 확신은 정말 대단하고
시기심이 일어날 정도로 아주 부럽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두 가지 자기의 믿음을 피력합니다.
하나는 로마 신자들에 대한 믿음인데, 이렇게 얘기하지요.
“나는 여러분 자신도 선의로 가득하고,
온갖 지식으로 충만할 뿐만 아니라
서로 타이를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15,14)
믿음이 강한 사람은 이렇게 남도 잘 믿습니다.
하느님의 능력과 선이 자기에게뿐 아니라 남에게도 있다고 믿는 거지요.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당신의 능력과 선을 주셨다고 믿기 때문이고요.
그러나 그렇게 믿긴 하지만 그래도 로마 신자들에게 대담하게,
어쩌면 주제넘게 충고를 많이 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이유를 댑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힘입어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대담하게 썼습니다.”(15,15)
그리고 다음으로 자기에 대한 믿음, 곧 자신감의 이유도 댑니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에 자신감의 이유들이 배어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그 일은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이렇게 일을 할 경우에만 진정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무슨 일을 하든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무슨 일이든 하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도 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