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50)
오늘은 마리아가 자신을 봉헌한 것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우리말로 바꾸어 자신을 바쳤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봉헌한다고 하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느낌이 더 큰데 비해
바쳤다고 하면 어디에 자신을 바쳤다는 느낌이 제게는 더 큽니다.
그러니까 자헌축일에는 마리아가 하느님께 당신을 봉헌한다는 뜻과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당신을 봉헌한다는 뜻이 같이 있는 것이고,
인격적인 봉헌과 사명적(일)인 봉헌의 뜻이 같이 있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봉헌은 말할 것도 없이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여성들 중에는 자기실현을 위해서나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서 결혼을 안 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애는 갖지 않는 여성들이 꽤 있는데
마리아의 경우는 어머니 되는 데에 자기 전부를 바치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다른 것은 모두 희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들을 위해서, 아들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어머니가 되었는데 주님께서는
마리아만 당신 어머니가 아니고 제자들도 당신 어머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어머니 마리아의 봉헌을 깎아내리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에서 끌어내리거나
어머니 마리아의 봉헌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어머니로, 무엇보다도 당신 어머니로 끌어올리는 것이고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우리 자신을 봉헌하라는 초대이지요.
두 번째로 우리가 봐야 할 자헌축일의 뜻은
당신 아들의 구원사업에 마리아께서 당신을 바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사업이란 말 자체가 일적인 봉헌이긴 하지만
인간구원을 위해 당신을 바치신 것이기에 인격적인 봉헌이라는 점입니다.
하느님께 봉헌하시는 것과 비교되는 인간에게 당신을 봉헌하시는 거지요.
위로의 봉헌에 비교되는 아래로의 봉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래로의 봉헌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그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후 어머니를 떠나 인간순례를 하십니다.
인간 중에서도 가난한 인간을 우선적으로 찾아다니십니다.
그러다 보니 사사건건 기득권층과 부닥칩니다.
그래서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어머니 마리아에게 들어갑니다.
요즘과 연관시켜 보면 아들이 종북 사제, 빨갱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 걱정이 되어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아가십니다.
진짜 미쳤는지 확인하러 갔거나 만류하러 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의 어머니라면 세상을 구한다는 가시밭길을 가려 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처럼 세상을 위해,
곧 사람들을 위해 당신을 바치게끔 운명 지어진 존재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구원을 위해 오셨기에
어머니 마리아도 세상 구원을 위해 봉헌되어야 합니다.
아들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하실 때 그때 자신도 봉헌하셨고,
그 아들로 인해 가슴이 꿰찔리는 고통을 당하실 것을 각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구원을 위해 자신을 바친 뒤
이제 사도들과 함께 아들의 구원사업을 위해 당신을 바치셨을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고 선언하시는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에 있어서 어머니나 제자들이나 같다는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어머니나 제자들이 같이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헌신, 봉헌이 제자들에게처럼 우리에게도 요청됨을 느끼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