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관점에서 묵상을 해봤습니다.
솔직히 오늘 엘리사벳의 말이나 행동은 아주 이상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의 말과 행동은 괴상하기까지 합니다.
엘리사벳이 정말 이랬을까요?
엘리사벳은 늙은 할머니, 막말로 하면 늙은 할망구입니다.
나이가 복음에 정확히 나오지 않으니
우리 마음대로 상상할 수도 있겠지요.
80은 안 되고 70은 먹은 할머니일지도 모르지요.
여러분 중에 웬만큼 나이 드신 분이 있다면
바로 내 나이의 여자라고 상상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늙어 임신한 엘리사벳이 젊은 임산부 마리아와 만나
‘나도 임신 했어!’ 하며 들떠 얘기하는 것만 같고,
엘리사벳의 표현도 너무 처녀스럽고 감성적이지 않습니까?
오늘 엘리사벳의 표현들을 한 번 보십시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처녀 마리아를 만나니 마음이 젊어진 것일까요?
어찌 이렇게 표현이 파릇파릇 싱싱하고 풍성할까요?
늙은이가 젊은 오빠인 것처럼 부러 젊은 차림하고
그런 말투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여러분에게는?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표현이나 몸짓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사실 엘리사벳의 임신은 너무 놀랍기는 해도
두렵거나 불안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기쁨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임신은 두렵고 불안한 거였을 겁니다.
아이를 못 낳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거라는
당시 이스라엘 신앙 안에서 엘리사벳의 임신은 마침내
하느님 축복을 받은 것이며 그래서 축하받을 일이지만
마리아의 임신은 축복 받은 것도 축하받을 일도 아니고
요셉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엔 죽을 수도 있는 거였지요.
이런 마리아였기에 자신의 임신이
성령의 임신이라는 확신이 필요했을 것이고,
확신을 위해서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도 임신했다는
천사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며,
이런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성령의 언어로 위로와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은 것도 성령의 이끄심이요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말도 성령의 언사입니다.
우리도 성령에 이끌릴 때
우리 주변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일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필요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위로와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자신들 안에서 이뤄진
하느님의 구원을 서로 확인하고 하느님께 찬미 드렸듯이
성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도 우리들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들을 확인하고 찬미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