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오늘 첫째 독서는 사무엘 하권의 끝부분으로서 다윗 왕 말년의 얘기입니다.
주님께서 사방의 원수들에게서 평온케 해주시고
자신은 향백나무의 으리으리한 궁궐에서 편하게 사는데
주님의 궤는 초라한 천막 가운데 있으니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성전 건립을 막습니다.
내가 너의 집안을 지금까지 지켜주었는데
네가 나의 집을 지어주겠다는 거냐고 물으시며
오히려 내가 네 후손 중의 하나를 세워
너의 집안을 다시 일으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마치 부모의 돈으로 학교 다니고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서 쓰는 주제에
부모의 생일을 맞아 그 자식이 건강식품이라도 사다드리려고 하면
그 돈으로 열심히 공부해 나중에 손이나 벌리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윗과 다윗 가문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가문이 하느님의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위해 건물을 하나 세워드리는 것보다
내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힘들고
나의 집안이 그렇게 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오늘 즈카르야는 드디어 입이 열려 찬미를 합니다.
그도 성령을 받아 찬미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찬미의 내용이 매우 장엄합니다.
자기에게 자식이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와 찬미만 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다윗 때부터 약속하신 대로
다윗집안에서 구원자를 일으키시어 이스라엘 공동체를 구하심을 찬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아들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찬미를 합니다.
요한이 지금은 비록 어린아이지만 큰 예언자가 되리라는 것,
자기 아들이지만 자기 아들만이 아니라 주님의 선구자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말문이 막혔던 그 10개월.
그것은 단지 자기 아들이 엘리사벳 태중에서 자라 태어난 기간일 뿐 아니라
자신 안에 있던 온갖 불신과 의심을 몰아내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로 가득 차게 하고,
보잘 것 없던 그의 신앙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그런 큰 신앙으로 자라게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10개월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자라고,
나의 작은 신앙이 큰 신앙으로 자라서
마침내는 나와 공동체의 구원에 대해
성령으로 가득 차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되는 그 10개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