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당연히 궁금하고,
어떤 분이 될지, 어떤 역할을 하실지 당연히 궁금합니다.
이런 우리의 궁금함에 오늘 시메온이 답을 줍니다.
그런데 시메온이 한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아기 예수가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할 거라고 하는데
이것이 예수께서 사람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거꾸러트리기도 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하실 거라는 얘기인지,
아니면 약한 사람은 능동적으로 일으켜 세우시겠지만
힘 센 사람들은 스스로 걸려 넘어지게 하실 뿐 능동적으로
거꾸러트리지는 않으실 거라는 얘기인지 말입니다.
사실 돌이 가만히 있지만 그것을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걷어차거나 그것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있으며
돌을 가져다가 디딤돌로 삼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왜 이런 생각을 제가 하느냐 하면
재작년인가 부정선거 시비로 인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신부들이 주도하고 저희 형제들도 이런 주장에 동참했을 때
많은 신자들이 항의 차원에서 또는 판단에 도움 받기 위해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많이 물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판단이 잘 안 섭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불의하게 당선되었다면 그 정권이 퇴진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데
그것이 드러났는데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거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때 물러나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도 두려움 때문에 예언적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는 사제들이 나서야 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또 다른 생각도 들지요.
사제들은 예언자들이지 조직적 운동가들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잘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도 불의를 하느님 나라 정의 차원에서 고발하지만
그렇다고 조직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그 불의한 세력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더 그러지 않았고요.
그래서 저는 예언의 소리는 분명히 내지만
적극적 행동의 차원에서는 어정쩡한 입장입니다.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는 신부님들을 존중하지만
저는 그렇게 행동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적극적 행동가들로부터 저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비난도 받습니다.
아무 소리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로부터는
사제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비난 받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비난을 양쪽으로부터 다 받아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실로 저는 이런 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잘 안 서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비난 받고 반대를 받는 저를
아기 예수께 대한 시메온의 예언을 가지고 위안합니다.
“이 아기는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저도 그렇다고 얘기하며 위안 삼는다면 이것은
물론 제가 무엄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위안 삼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