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기념하는 오늘,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바오로 사도의 토로를

우리의 기도와 비교하며 깊이 헤아려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토로가 여쭙는 말의 형태이지만

사실은 기도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아주 가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기도하잖습니까?

 

그런데 겉말은 같은데 속 내용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가 주님을 위해 자기 삶을 바꿔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 안에서 주님께 여쭙는 것이라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 난관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타개책을 여쭙는 것일 때가 많지요.

 

한 마디로 바오로 사도의 경우는 주님을 위한 것인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나를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의 차이도 느낍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절실하게 주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건성으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이제부터 당신은 정말 저의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것은 어림도 없는 것이었고 

오히려 자기가 그 추종자와 잔재를 없애야 할 신성모독자였을 뿐이지요.

그런데 주님의 은총으로 신성모독자였단 분이 자기의 주님이 되고,

박해자인 자기는 그분의 종이요 사도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회심사건 이후 바오로 사도는 편지를 쓰며 자기를 소개할 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나 바오로라고 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오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측면에서도 우리의 <주님 부름>을 반성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쭙기 위해

주님을 부르는데 비해 우리는 거의 언제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해주시겠는지 여쭙기 위해서 주님을 부릅니다.

 

이것은 마치 무엇을 시키기 위해서 어이, 이리 와봐!”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이하기 죄송하니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뿐이요,

이거 해!”라고 하기가 죄송하니 제 기도 들어주소서.”라고 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제가 하겠나이다 하지 않고,

거의 언제나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만 하는데,

기도를 들어달라는 말은 기도대로 하느님께서 하시라는 요구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에 우리도 그분처럼 회심을 한다면

기도를 할 때 대뜸 이것이 필요하니 그것을 주소서 하는 식이 아니라

주님, 제가 당신 앞에 왔나이다. 제가 무엇을 하기를,

어떻게 하기를 당신은 원하십니까?”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얼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여쭐 때 주님께선

우리에게도 바오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은 대답을 하실 겁니다.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

 

그러니 회심이란 <청하는 사람>에서 <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

좀 더 풀어 얘기하면 내 원하는 것을 청하기만 하는 사람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기꺼이 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임을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증인이 되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3Feb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같은 고향에 살았던 사람이고, 그 친척과 가족들도 모두 아는 사람인데, 여느 사람들과 다른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질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
    Date2016.02.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629
    Read More
  2. No Image 03Feb

    연중 4주 수요일-죄를 부추기시는 하느님, 천벌이 낫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오늘 다윗의 얘기는 묵상꺼리가 많습니다. 인구조사를 한 것이 왜 죄가 되는지. 다윗이 범한 죄의 벌을 왜 백성들이 받아야 하는지. 하느...
    Date2016.02.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68
    Read More
  3. No Image 02Feb

    주님 봉헌 축일-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봉헌하셨다.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그런데 이 축일에서 주어는 누구입니까? 주님 자신이십니까, 아버지 하느님이십니까, 아니면 성모님이십니까?   전례적인 의미는 요셉과 마...
    Date2016.0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82
    Read More
  4. No Image 01Feb

    연중 4주 월요일-생활관상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생활관상>   우리는 오늘 또 다윗의 놀라운 신앙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행위를 그저 인간의 행위로만 보지 않...
    Date2016.0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69
    Read More
  5. No Image 31Jan

    연중 제4주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아야 예수님을 인정하겠다는 마음이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믿는 마음...
    Date2016.01.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94
    Read More
  6. No Image 31Jan

    연중 제 4 주일-덮어줄까, 까발릴까?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예언자는 하기 싫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하도록 배속에서부터 성별되고 파견된 존재가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그러므로 우...
    Date2016.01.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159
    Read More
  7. No Image 30Jan

    연중 3주 토요일-이미 지은 죄보다 큰 죄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어제 강론 끝에 말씀드린 대로 나단 예언자는 다윗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싫고 괴롭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예언자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것보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더 싫겠...
    Date2016.01.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8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42 843 844 845 846 847 848 849 850 851 ... 1322 Next ›
/ 132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