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생활관상>
우리는 오늘 또 다윗의 놀라운 신앙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행위를 그저 인간의 행위로만 보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다윗에게서 본받아야 할 생활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해보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싶은 일이
우리 사는 가운데 일어나고 오늘 다윗에게서도 일어났습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거역하고, 심지어 아버지를 내쫓는 것 말입니다.
오늘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을 갑니다.
아들한테 내쫓기어 피난 가는 그 심정이 얼마나 가슴 쓰리겠습니까?
제가 비록 아비가 되어보지 못하고 나라의 임금이 되어보지 못하였어도
제 생각에 자기가 세운 나라를 빼앗기는 그 슬픔과 고통이 아무리 커도
자식을 잃는 슬픔과 고통에는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둔 분들이라면 충분히 비교 상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전 재산을 잃는 것과 자식을 잃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고통인지.
자식 때문에 전 재산을 잃었는데 만일 자식이 그것 때문에
집나가서 포기한 인생을 산다면 어떤 것이 더 큰 고통인지.
아무튼 다윗은 그렇게 나라도 잃고 자식의 버림도 받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때 옆에서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짓밟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노릇이지만 우리 사는 중에 얼마든지 있는 일이지요.
사울의 친척 시므이는 사울이 다윗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압살롬의 반역을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이라며 저주합니다.
이에 다윗의 우군들이 ‘저 무슨 개 뼉다귀 씹는 소리냐!’ 하며
가서 시므이를 쳐 죽이자고 하지만 다윗은 그들을 만류합니다.
시므이의 소리가 다윗의 장수들에게는 ‘개 뼉다귀 씹는 소리’로 들렸지만
다윗에게는 그런 소리로만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저 시므이의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에 아들의 반역이 정말 하느님의 벌일까요?
그저 못된 아들의 반역일 뿐 하느님의 벌은 아닐 수 있지요.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시므이가 주님을 들먹이며 저주를 하는 바람에
하느님께서 저 시므이를 통해서 비록 지금은 뭔지 모르지만
당신 뜻이 있으셔서 저렇게 말하게 하신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즉시 신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인간의 행위 안에서 하느님을 보는 것, 이것 정말 쉽지 않지요.
간혹 우리 가운데에는 그 일이 한참 지나고 난 뒤
아 그게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듣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저것은 하느님께서 시켜서 하는 소리야!
저것은 개소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야!’라고,
이렇게 알아듣는 그렇게 신앙 깊은 사람은 정말로 많지 않습니다.
생활 가운데 현재적으로 하느님을 관상하는 생활관상,
인간의 말이나 저주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아듣는 생활관상,
이것이 필요함을 우리는 오늘 다윗에게서 보고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