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오늘 다윗의 얘기는 묵상꺼리가 많습니다.
인구조사를 한 것이 왜 죄가 되는지.
다윗이 범한 죄의 벌을 왜 백성들이 받아야 하는지.
하느님 자비에 맡긴다는데 자비하신 하느님은 왜 벌을 주시는지.
정말 인구조사를 한 것이 왜 죄가 되는 걸까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인구조사도 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오늘 날 인구조사를 하듯 백성을 위한 인구조사, 다시 말해서
좋은 정책을 펴기 위해 하는 인구조사라면 왜 죄가 되겠습니까?
다윗의 인구조사는 분명 다른 이유의 인구조사였던 것입니다.
어떤 다른 이유?
오늘의 독서는 사무엘 하권의 맨 마지막 장이고,
1절은 빼고 2절부터 우리가 읽었는데 1절은 이런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인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시며 말씀하셨다.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여라.’”
그러니까 왜 이스라엘에 진노하셨는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진노를 살 짓을 한 것이고,
그래서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다윗의 죄를 부추기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더 이해하기 어렵게 됩니다.
죄를 짓도록 하느님이 부추기셨다는 얘긴데
이스라엘이 진노를 샀으면 바로 그냥 벌을 내리시면 되지
왜 굳이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부추기시는 걸까요?
제 생각에 진노의 이유가 아마 이스라엘의 방자함 때문일 겁니다.
오늘 1사무엘 24장의 앞장인 23장에서 마지막 말이라고 하며 다윗은
하느님께서 자기 집안을 굳건하게 해주셨다고 자랑하듯 말하고,
사무엘기는 훌륭한 장수들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나열을 하였지요.
그런 다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으로 보아 다윗과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태평성대에 대해서 겸손하지 못하고
자기도취에 빠진 것이 아닐까 짐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인구조사는 자기가 얼마나 부자인지 확인하고,
자신의 군대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열병식을 하는 것과 같은 거였지요.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을 잊고서 자기를 뻐긴 것이고
이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정말로 죄를 부추기신 건가요?
오늘 말씀을 보면 하느님께서 죄를 부추기신 것은 맞지만
죄를 짓기를 원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럴 리 없지요.
그렇다면 부추겨도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다른 백성은 현재의 태평성대에 자아도취 하더라도
다윗만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부추기신 것인데
다윗마저도 하느님을 잊고 자기의 부를 뻐긴 것입니다.
저도 어떨 때 노림수를 가지고 형제들을 시험에 빠지는 것을 내버려둡니다.
내버려두면 틀림없이 실수하거나 잘못을 범할 것을 알면서도
뼈저린 실수와 실패 체험을 통해서 다시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다윗마저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다윗은 역시 다릅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과 달리 잘못을 국민에게 돌리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자기의 죄지 백성의 죄가 아니라고 자기가 책임을 지고
자기에게만 벌을 내려달라고 하지만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겠다고 하시자
무자비한 인간이나 자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벌을 맡깁니다.
우리는 천벌天罰을 받아 죽을 놈이라고 욕하면 아주 심한 욕인데
천벌이 낫다는 대단한 믿음입니다.
우리도 죄를 지어 벌을 받아야 한다면 하느님 자비에 벌을 맡기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