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달라는데 나쁜 것을 줄 아비 없고,
나쁜 것을 달라는데 나쁜 것을 줄 아비 없다.
나쁜 것을 달라 해도 아비는 좋은 것을 준다.
인간 애비가 이렇다면 하느님 아버지는 더 그러하시다.
그러니 좋은 것을 청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청한 것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셨다면
내가 나쁜 것을 청했거나 적어도 지금은 들어주실 때가 아닌 것이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제가 평소에 늘 갖고 있는 생각이고,
그래서 오늘 복음을 읽자마자 한 달음에 써내려간 단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좋게 믿는가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안 좋은 쪽으로 믿습니다.
며칠 전 한 형제가 생각 없이 말을 했습니다.
이 말에 저도 이런 생각이 우선 탁 드는 것이었습니다.
툭 튀어나온 말이니 평소 내게 반감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고 머리를 흔들며
‘평소 나답지 않게 왜 이렇게 생각을 하지?’ 하며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려고 했지만 그런데도
계속 그런 쪽으로 생각을 몰아가는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옛날의 저는 그러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꽤 오래 전 청원장을 할 때 청원기 형제들이 떼거리로 몰려와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군중심리에다 감정이 격해지다보니
‘원장님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분입니다!’라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얘기하자고 돌려보낸 다음,
제가 각개격파를 하였습니다. 형제들이 나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러나 나는 형제들이 나를 믿기에 이렇게 얘기하는 거라고 얘기했고,
그러므로 저는 형제들이 저를 믿고 있음을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믿지 못할 사람으로 저를 생각했다면
뒤에서는 얘기해도 면전에서 대놓고 얘기하지 못했을 것이고,
면전에서 얘기하더라도 이렇게 심한 표현까지는 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식이 엄마한테 막말을 하고 온갖 신경질을 다 부릴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해도 엄마는 받아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고,
적어도 이것 때문에 사랑을 거두지는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이랬던 제가 왜 안 좋은 쪽으로 믿을까, 악마의 유혹일까 생각되었는데
나이를 먹으면 서운한 일이 많아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격지심自激之心이라는 것이 있지요.
나이 먹어 약해지고, 열등해지고, 초라해질 때 자격지심이 생기고,
자격지심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안 좋게 받아들이며
그래서 서운해 하고, 노여워하곤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힘이 없을 때 자신감이 없고,
자신감이 없을 때 다른 사람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의 인간의 경우는 자신의 힘이 자신감의 근원이고,
자신감이 다른 사람을 좋게 믿을 수 있는 힘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이와 같은 것일까요?
다른 인간은 나와 마찬가지로 믿을 수 있는 만큼 좋은 존재가 아니기에
자신감만큼, 곧 자신을 믿는 만큼 다른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하느님은 우리 인간과 달리 지상선至上善이기에 믿을 수 있는 분이시고,
우리가 자신을 믿을 수 없기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을 새겨들어야겠습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