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형제와 화해하여라.”
오늘은 제가 지은 짧은 얘기, 곧 소설을 소개할까 합니다.
오래 구상하고 쓴 소설이 아니라 오늘 새벽 1시간 만에 쓴 소설이지요.
그 내용은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 벌어진 일을 다룬 가족사 얘기입니다.
그 옛날 그 집의 부모는 다른 부모들보다는 신식인 분들이었습니다.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지는 않았지만 신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집들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앞서 가는 집안이었고,
자식들도 다 이런 식으로 뛰어나도록 교육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둘째 아들만이 부모와 형제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꾸 엇길을 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음은 물론 비행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더 먹어서는 사고를 쳐 감옥에도 몇 번 들락날락하였고,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난 뒤에는 가족과 등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탈선은 사실 부모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식 부모임에도 자녀 사랑과 교육에서는 다른 부모나 마찬가지로
늘 큰아들, 큰아들하며 장남을 편애하였습니다.
둘째 아들도 한 때는 잘해서 형만큼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 그렇게 노력을 해도 부모의 사랑이 여전히 형에게만 쏠리자
사춘기부터는 반발로 부모의 기대를 거스르는 행동을 부러 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가족과 등지고 살다가 아이를 하나 낳고 둘을 낳으면서
차츰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고
자기가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을 더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형과의 경쟁심 때문에 부모가 자기를 사랑치 않았다고 오해한 거지요.
한 편 부모는 그런 둘째 아들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고생하는 것을 보면
미안하고 속상하여 언젠가 이해하고 찾아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자신들이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다른 자식들은 명절이 되면 다 손자들을 데리고 오지만
둘째 아들 가족만 계속 오지 않자 부모는 초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너무 편찮아 이제 언제 돌아가실지 정말 모르게 되자
어머니가 둘째 아들에게 기별을 하여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도 뵙고
가족끼리 왕래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라고 설득을 하였습니다.
사실 진작 찾아봬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면목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둘째 아들도 이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가족을
모두 데리고 명절에 고향에 가 부모와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가족은 다 둘째 아들의 귀환을 너무도 기뻐하며 환영하는데
큰아들만은 동생이 재산상속 때문에 왔다고 오해하며 박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생 부모의 뜻 어기지 않고 착실히 살며 부모에게 효도하였건만
마지막에 가서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효도를 한 것이고 누가 불효를 한 것입니까?
오늘 에제키엘서의 말씀에 따르면
과거 아무리 잘 했어도 지금 잘못하면 그것이 불효이고,
과거 아무리 잘못 했어도 지금 잘하면 그것이 효도지요.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에 따르면
형제와 화해하지 않고 하느님께는 제물을 바친다면 그것이 불효입니다.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지만 형제들과 의가 상해 혼자 오는 자식보다
빈손으로 오더라도 형제와 같이 오는 자식이 더 효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이 제일 훌륭한 선물임을
다시 생각해보는 오늘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