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매일 같이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로서,
매일 같이 바치는 감사송 때문에 저는
매일 같이 도전과 자극을 받으면서도
매일 같이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매일 같이 이렇게 우리는 기도하지요.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것을 오늘 사랑 계명에 대입하면 이렇게 되겠지요.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를 사랑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런데 사랑을 의무와 도리로서만 하면 그것이 사랑인지,
그렇게 사랑을 하면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며
그런데 저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임을 반성하며 죄송해합니다.
어제는 미사성가가 모두 프란치스칸 성가였고
퇴장 성가가 <프란치스코의 기도>였습니다.
저는 대체로 성가를 정말 마음을 다하여 부르는 편이고
그래서 가사를 충분히 묵상하며 몰두하여 노래를 불렀는데
프란치스코의 마음과 사랑이 제게도 와 닿으며
나도 이런 사랑을 지녔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이런 사랑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왔습니다.
그 가사, 곧 프란치스코의 기도 내용은 이러하지요.
“주님, 저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황송하옵게도 당신이 죽으셨으니,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저도 죽을 수 있도록
당신 사랑의 불과도 같고 꿀과도 같은 힘으로
제 마음을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에서 빼내어 차지하소서.”
기도의 내용대로 관건은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체험하고,
그 사랑이 내게 꿀과도 같고 불과도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의무와 도리로 사랑하거나 심지어 억지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실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쩌면 사랑의 감수성입니다.
그런데 감수성感受性이란, 말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사랑 불감증 환자가 있습니다.
성적인 불감증 환자가 있다고 하지요.
사랑 불감증도 이와 같은 것으로 기껏 사랑을 했는데
사랑을 사랑으로 못 느끼고 그래서 사랑을 못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성적인 불감증에 대해서 문제를 크게 느끼며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 원인을 열심히 찾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에겐 성적 불감증보다도 이 사랑 불감증이 더 심각한 문제인데
그렇게 생각하는지, 해결키 위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해아 할 겁니다.
제 생각에 그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이 뭔지 아예 모르거나,
인간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은 알지만 초월적인 감각은 없거나,
하느님 사랑이 참으로 좋은 줄은 알지만
그 사랑이 결코 쉽지 않아 포기하였거나,
사랑의 고통이 두려워 일체의 모든 사랑을 포기하였거나,
아무튼 이중 어떤 이유와 원인 때문에 하느님 사랑을 못 느끼는 것인데
주님께서 이 사랑 불감증을 치유해주시길 기도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