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오늘 우리가 들은 민수기는 조급함에 대해서 성찰케 합니다.
조급함은 죄일까?
아니면 그저 성격일 뿐일까?
조급한 성격이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저 성격일 뿐이라면 죄가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조급함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떼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조급함이 이렇게 죽음에로까지 몰고 간다면
조급함을 그저 성격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조급함 때문에 하던 일을 망치거나 회사가 망하고,
조급함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음에로 내몰 수가 있지요.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조급함은 성격입니까, 부덕함입니까?
성격적으로 조급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조급함은 부덕함의 소치입니다.
같은 저인데도 어떤 때는 조급하고, 어떤 때는 느긋하잖아요?
제 생각에 조급함은 욕심의 산물입니다.
욕심이 크면 클수록 조급함은 심하고
그런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느긋하지요.
며칠 전 양성을 하는 형제들과 술 한 잔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양성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양성을 받는 형제들에 대한 걱정이 매우 크고 그래서 조바심이 있지요.
그 형제들을 보면서 30대 때의 제가 생각났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주 조급하여 형제들을 기다려줄 줄 몰랐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방황과 고뇌를 거쳐 도달한 상태를
형제들이 1, 2년 내에 도달하기를 욕심 부리며 죄고 닦달을 했고,
그래서 저는 그런 저를 경계하기 위해
줄탁동시啐啄同時를 경구로 삼아 자주 자신에게 되뇌곤 하였지요.
아무튼 조급하지 않으려면 욕심을 내려놓고, 비우는 것,
곧 마음의 가난이 관건인데 그런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지요.
욕심을 이룰 수 있는데도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 민수기는 스스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죽여주시고 살려주시는 얘기를 들려줍니다.
말하자면 뱀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하여 욕심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죽이시고,
다른 모든 욕심 버리고 오직 살기만을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살리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이런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정 이런 극약처방을 통하여
우리를 가난하게 하시고 당신께 순종케 하시며
우리의 욕심慾心을 신심信心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이런 인생역정을 거친 우리는 이제
조르지 않아도 주시는 은총의 하느님을 믿고,
지금이 아니어도 언젠가 주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고통을 주시어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죄를 지었어도 그 사랑 변치 않으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