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베드로는 원래 반석이었나?
아니다.
오늘 봤듯이 원래는 시몬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께서 너는 베드로라고 하신 순간 반석이 된 것인가?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반석이 된 것은 맞지만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반석, 곧 교회의 반석이 되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래서 시간이 필요했음에 틀림이 없다.
오늘 주님께서도 ‘내가 오늘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웠다.’ 하지 않고,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하고 미래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주님 교회의 반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겠지요.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고,
사실 이건만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은 영들밖에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영들과 마찬가지로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충분치 않고 더러운 영들과는 달라야 하지요.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알기만 할뿐 사랑하지 않고
자기하고는 상관없는 그리스도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임을 알았지만 자기의 그리스도로 믿지는 않은 겁니다.
베드로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고백했지만
수난의 현장에서는 “나는 모르오.”라고 관계를 부정했지요.
그러니까 오늘 베드로의 고백은 아는 것의 고백이지
믿음의 고백은 아직 아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은 사랑의 고백과 의탁으로까지 이어져야지요.
그런데 베드로가 이런 믿음의 고백에까지 이르는 데는 흔들림이 있었고
그것을 은유하는 사건이 바로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에 빠진 얘기입니다.
주님을 완전히 믿었고 주님만 바라봤다면 물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물을 봤고 물의 거셈이 주님보다 더 대단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제 생각에 베드로가 물에 빠지는 일은 부활하신 다음
너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세 번 사랑을 고백한 다음에도
그리고 성령을 받아 복음의 선포자가 된 다음에도 여러 번 있었을 겁니다.
“쿠오바디스”란 영화에서 늙은 베드로가 신자들을 놔두고 로마를 도망칠 때
자기 앞에 나타나신 주님께 "Quo Vadis Domine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베드로가 여쭙자 네가 버린 내 양들을 찾아 로마로 가신다고 하심에
베드로는 마음을 돌려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지요.
이 얘기는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기에 사실이 아니지만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되기까지는
다시 말해서 순교로 교회의 반석이 되기까지는
그의 믿음이 흔들렸을 것임을 얘기하고자 한 것이지요.
분명 그랬을 겁니다. 여러 번 믿음이 흔들렸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 사도행전의 얘기처럼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을 겁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결코 혼자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믿음이고, 신자들의 믿음이고, 그래서 교회의 믿음입니다.
베드라가 믿음직해서 주님께서 베드로를 믿으신 것이 아니고
주님의 믿음이 베드로를 믿으신 것이고,
신자들의 믿음과 기도가 흔들리는 베드로의 믿음을 굳게 한 겁니다.
우리의 믿음도 주님의 믿음과 공동체의 믿음과 함께 성장해가는
그런 믿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