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며 병자의 죄가 용서 받았다는 말씀에
율법학자들은 신성모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서의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런 생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겠지요.
이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용서의 권한이 있음을 알게 해주겠다고 하시고,
그리고 복음은 사람들에게도 같은 권한이 주어졌다고 얘기합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주겠다.”
“이 일을 보고 군중들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제 생각에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죄 용서의 권한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주어졌다는 것이 마태오복음의 정신입니다.
오늘 복음과 같은 내용의 마르코나 루카 복음에서는 중풍병자의 치유와
죄 사함의 사건을 보고 난 뒤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는데
그 찬양의 이유가 바로 치유의 기적 때문인데 비해
오늘 마태오복음에서는 죄 용서의 권한을 사람에게 주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 베드로 바오로 사도 축일의 마태오복음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정체를 정확히 얘기하자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시며 이 반석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운다고 하시고,
죄 용서의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시며 이 세상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고
이 세상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런 얘기가 다른 복음,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진정 죄 용서의 권한이 있고, 땅에서 용서는 있는가?
하느님께만 죄 용서의 권한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 아닌가?
사실 하느님께만 죄 용서의 권한이 있다는 말이 맞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내가 용서해주는 것 말고 나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죄를 하느님이 아닌 내가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은
그럴 권한이 애초부터 인간에게 있는 것 아니고
받을 자격이 있어서 권한이 주어진 것도 아니며
순전히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개신교와 우리 천주교의 차이점이고 쟁점이기도 하지요.
개신교는 하느님과 나 사이에 다른 은총의 매개를 인정치 않기에
성사도 인정치 않고, 성사의 거행자인 사제도 인정치 않으며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 성인들의 통공도 인정치 않습니다.
죄 용서는 하느님께 직접 청하고 직접 받으면 되지
왜 고백성사나 인간(사제)을 통해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느냐고 개신교는 얘기합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은 어제 복음과 오늘 복음을 가지고,
곧 마태오복음을 가지고 교회론과 성사론을 펼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와 지체들에게
당신을 대신하게 하시고 당신의 권한을 위임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역시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최후심판 얘기도 우리는 여기서 봐야겠습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당신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당신처럼 생각하고 도우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지체들인 우리는 주님의 권한 위임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무겁게 받아들여 권한을 봉사로 써야 합니다.
마치 자기가 권한자인 양 행세하여 주님을 가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하느님의 용서를 땅에서도 체험하도록 우리 서로 은총의 매개자들이 되고
특히 저 같은 사제들은 고백성사를 통해 주님 용서의 매개자가 돼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