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오늘 주님께서 어머니를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께 합당치 않다고 하신 말씀을 인간보다 더 사랑 받고 싶어서
그리 말씀하신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없을 겁니다.
구약에는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그것은 비유적인 것이지
진짜 질투나 하시는 하느님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만일 그런 분이라면 그런 하느님은 하느님도 아니십니다.
사실 하느님은 여러 존재 중의 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곧,
독불장군식의 유일한 하느님이라는 뜻에서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저는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삼위이지만 하나이시고, 우리와 하나이신 분이라는 뜻에서,
하느님은 우리와 나뉠 수 없는 그래서 둘이 아닌 하나이신 분이라는 뜻에서
하느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대찬성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께 합당치 않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결코 시샘이나 질투의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만일 저의 어머니가 당신보다 형을 제가 더 사랑하면
당신께 합당치 않다고 하신다면 그런 분은 어머니도 아니고
그런 어머니의 사랑도 참 사랑이 아닌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의 사랑을 부모와의 사랑에서 떼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에 대한 사랑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께 합당치 않다는 말씀도
모든 사랑의 근본이요 기본인 하느님과의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은 사랑이나
동떨어진 사랑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가운데는 부모의 사랑은 보지만 하느님 사랑은 보지 못하고,
그래서 부모는 사랑하지만 하느님은 사랑치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바로 무신론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얘기하며 휴머니즘적이라고 하고,
인류애가 뛰어난 사람을 일컬어 휴머니스트라고 칭송도 하는데
이 휴머니즘이나 휴머니스트 가운데 무신론이 자리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심지어 수도원 안에서도 사랑을 심리학적인 차원에서만 얘기하고
영성적 차원에서 얘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무신론적인 모습이지요.
주님께서는 당신과 우리의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라는 뜻에서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임을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