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주님께서는 오늘 병자들을 치유해주신 다음
당신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알리지 말라고 하신다고
사람들이 알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널리 퍼트립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러리라는 것을 모르셨거나
알리지 말라면 사람들이 알리지 않을 거라고 믿으셨을까요?
모르실리 없으시고 그래서 믿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저처럼 선행을 한 것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갈려서 그러신 것일까요?
저에게는 아주 속물근성이 있습니다.
제가 아무 소리 안 해도 사람들이 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데도 작곡을 많이 한 거를.
제가 중요한 책임을 많이 맡았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임을.
제가 과거 좋은 일을 한 것이나 지금도 하고 있는 거를.
이렇게 알아주기를 바라고 그리고 알아줄 때 존재의미를 느끼기에
제가 하는 상당수의 좋은 일은 이런 동기에서 비롯되고,
이런 저를 알아주지 않을 때는 못 견뎌 하거나
아무 것도 아닌 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내가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속물근성의 제가 아니고
영적으로 뛰어난, 다시 말해서 속물근성에서 초월한 저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저는 어떤 때 괴물과 같습니다.
어떤 때는 매우 속물이다가 어떤 때는 매우 성스러운 괴물,
심지어는 사람들이 알아주기 바라는 것을 초월한,
성스런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고차원적인 속물인 괴물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바로 이사야 예언서가 말하는 야훼의 종, 메시아라는 거지요.
야훼의 종, 메시아는 소리치지 않음은 물론 소리를 내지도 않아
사람들이 아무도 길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정의를 펼치시고, 자비를 이루십니다.
그러니까 소리 없이 강하시고,
아무 것도 안 하시듯 온갖 좋은 일을 하십니다.
특히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부러진 갈대는 보기 싫지요.
연기 나는 심지는 가망이 없어 보이지요.
더욱이 내가 그렇게 기대를 하고 사랑을 쏟았는데도
부러진 갈대가 되고 연기 나는 심지가 되었다면 아예 포기해버리고 싶지요.
우리 같거나 특히 저 같으면.
요즘 제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데
꺾이기 쉬운 갈대, 쓰러져가는 갈대를 꺾이지 않고 쓰러지지 않도록
그렇게 기도를 하고 애를 썼는데도 그런 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
서운함을 넘어 괘씸하기도 하여 아예 포기해버리고픈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행히도 저와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는 오늘 말씀처럼
부러진 갈대요, 연기 나는 심지인 우리는 오늘도 주님께 희망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