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랑을 할 때
상대방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사랑이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물을 줌으로 해서 사랑이 표현될 수 있다는 것,
마음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함에 있어서
우리가 쉽게 실수할 수 있는 것 또한
무엇을 주는 것 안에 있습니다.
내가 주고 싶어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기 원하는 것을 선물로 주곤합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저 사람도 좋아하겠지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행동하는데,
그것이 종종 맞아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는 주었는데,
상대방은 아무 것도 받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사랑을 표현했는데,
상대방은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왜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일까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은
섣부른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을 보아야 합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생각이 어떠한지 헤아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예수님 발치에 앉아있습니다.
누군가 내 말에 경청하고 있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습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나를 지지해 준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경청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고,
그러한 경청을 통해 또한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마르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려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라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 마음도 좋은 마음이지만,
자칫 그 마음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질투나, 내 방식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분노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사랑의 마음은
가치를 잃게 됩니다.
경청한다는 것,
그것이 사랑 표현의 한 방법임을
기억하는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