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는 얘기인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그러니까 주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면
1) 예레미야/나를 잘 아시는 분,
2) 예레미야/나를 성별하시는 분,
3) 예레미야/나를 파견하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예레미야/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하느님이 돼가지고 예레미야/나를 모르신다면 말이 되겠는가?
생겨난 아이를 그저 낳을 뿐인 어미도 자기 자식을 잘 아는데
생기게 하신 하느님께서 어찌 당신 조물을 잘 모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잘 아신다는 것은
수학공식을 모두 아는 것과 같이 그런 건조하게 안다는 말씀이 아니고
하느님이 돼가지고 당신의 알고 있음을 뽐내듯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이 종종 나는 네가 누군지 다 알고 있고,
나는 네가 한 짓을 다 알고 있으니 까불지 말라고 하듯
당신의 아심을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다 이해하신다는 것이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고 할 때
네가 아이라는 것과 모르는 것 다 알고, 네 마음도 잘 알고 있으니
아이라는 것과 모르는 것 때문에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시는 겁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두 번째로 예레미야/나를 성별聖別하시는 하느님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교만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나 마찬가집니다.
성별한 것이니 선민의식에 젖어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별이란 사람위에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레미야/나를 사명을 주어 파견하시는 하느님을 보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어마어마한 말씀을 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참, 내! 하느님은 저의 뭘 보시고 파견하시는지!
어린이이고 능력이 없는 나를 믿고 파견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푸념하지만 물론 저의 능력을 믿고 파견하시는 게 아니라
당신의 능력으로 하도록 파견하시는 것쯤은 압니다.
그런데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명령대로 제가 할 거라고 믿고 파견하시는 겁니까?
제가 순종 잘 안 하는 사람이라는 것 잘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어찌 저를 믿고 파견하시는 겁니까?
역시 저를 믿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믿으시는 것입니다.
제가 순종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을 당신의 사랑을 믿으시는 것이고,
그렇게 포기치 않는 당신의 사랑으로 저를 계속 믿어주면 언젠가는
당신의 사랑이 저의 순종을 견인할 거라는 것을 믿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저 자신에게나 형제들에게 세뇌하듯 말합니다.
형제를 믿으려면 먼저 하느님처럼 자신의 사랑을 믿어야 한다고,
이 사랑의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결코 형제를 믿을 수 없고,
소명을 살아갈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못할 겁니다.
아무튼 뚝심이 대단한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