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불경하기까지 한 생각인데
주님이 너는 행복하다고 하시면 시몬이 행복한 것인가?
주님이 너는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시몬이 진짜 행복했을까?
루카복음의 행복선언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허나 주님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아무리 말씀하셔도
가난한 사람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마태오복음의 선언과 연결시키면
영으로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해도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주님께서 시몬에게 행복하다고 하셨어도
시몬은 주님이 왜 자기보고 행복하다 하시는지 모르고
주님께서 자기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라고 바꿔주셨어도
시몬은 여전히 베드로가 아닌 시몬으로 남아있었을지 모르며,
아무리 너는 내 교회의 반석이라고 하셨어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
시몬은 여전히 반석이 아니라 가실 길을 막는 걸림돌이었을지 모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시몬이 행복한 이유로
당신이 누구신지 하느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당신이 누구신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정말로 제대로 알았다면 시몬은 분명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이 주님을 이해한 것은 반만 안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만 알았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그가 생각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실패해서도 안 되고 죽어서도 안 되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사랑의 하느님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야만 하는데
사랑은 수난과 죽음이 부활이라는 당시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제대로 안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의 뜻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치기로 압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모르던지.
반쪽만 알거나 자기 좋은 쪽으로만 알던지.
그래서 행복도 얼치기 행복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르며,
불행하지 않은 걸로 행복한 줄 알거나
불행한 줄 모르고 행복하다고 착각하거나.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너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기에 행복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