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주님께서는 당신이 가시는 길을 막고 나선 베드로에게
‘사탄’, ‘걸림돌’이라고 하시며 “내게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게서 물러가라는 말씀을 영어로 보면
“Get behind me”로서 당신 뒤에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인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있으면 걸림돌이 될 뿐이니
당신 등 뒤로 물러서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당신을 따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지 앞서가는 존재이어서는 안 됩니다.
앞서는 존재가 되었다가는 베드로처럼 제 마음대로 가다가
잘못된 길을 가거나 주님 가시는 길에 걸림돌, 방해물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지 우리는 살지 혼자 가거나 멋대로 가면 죽습니다.
지난 행진 때 길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길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행진 첫날 익산 클라라 수녀원에서 천호 성지 가는 길을
전에 답사했음에도 순간 잘못 판단하여 다른 길로 많이 간 다음에야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깨달았습니다.
땡볕에 그 많은 인원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저는 겉으로는 침착하고 태연한 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무척 당황스럽고
첫날부터 이렇게 되어 행진자들에게 미칠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
심리적인 영향까지 생각하니 죄송스런 마음에 입이 바짝 탔습니다.
그때 마침 첫날 같이 걸었던 전주교구 신부님께서
그곳 지리를 잘 아셔서 우왕좌왕은 1 시간을 넘지 않을 수 있었고,
길에 대한 묵상을 다시 한 번 깊이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30대까지만 해도 저는 ‘꼭 이미 있는 길을 가야 하나 내가 가면 길이지’
이런 교만한 생각을 하였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클라라 성녀의 유언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더욱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우리의 성소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에게 길이 되어주셨고,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고 본받은 이셨던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께서
말과 모범으로 이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라는 길이 없다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길이 막혔을 것이고,
프란치스코가 그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저희가 익산서 천호성지 갈 때
우왕좌왕하고 한참을 헤맸듯이 그렇게 헤맬 터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이 되어주셨고 프란치스코가 그 길을 알려주심에
클라라는 두 분을 엮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따르지 않고 우리는 하느님께 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필요가 없지만
하느님께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가고 싶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싶지만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고통스럽고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땡볕을 걷는 길은 나섰고 행진은 무사히 마쳤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길을 나설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던져진 도전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