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자기 목숨만큼 귀중한 것이 없기에,
그것을 잘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자기 목숨이 너무나 중요한 나머지
자기 목숨만 구하려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선택의 상황에서
내 목숨과 다른 사람의 목숨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내 목숨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볼 때,
그것만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드는 소방관들이나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목숨,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할 때
일을 그르치는 모습을 종종 보곤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자기의 목숨, 자신의 안위가 중요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목숨, 다른 사람의 안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을 무시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은 그림자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의 문제는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하느님마져도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더 이상 그의 눈에 하느님은 없으며,
더 나아가 독불장군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과 관계가 끊어진 그리스도인의 삶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반대로 하느님 때문에, 사랑 때문에
자신의 것보다는 옆 사람을 보고,
내 것만 선택하기보다는 옆 사람도 존중해 주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더 큰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희생이 따르지만,
그 희생을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복음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갚아주심은
내가 한 그 만큼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불어난 상태로 갚아주심입니다.
지금 당장은 희생이 크게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난을 선택한다면,
그 희생을 참아 견딜 수 있고,
결국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