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화 데레사라고 하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축일을
우리는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데레사 축일을 대축일로 지내는 것입니까?
그것은 데레사가 본받을 만한 위대한 성덕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그 위대함 때문이 아니라 선교의 수호자이기 때문이고
우리나라가 선교 대상지역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녀 데레사는 우리 모두 잘 알다시피 선교는커녕
일생을 봉쇄의 담장 안에서 사셨고 24살에 세상을 뜨신 분이십니다.
이런 데레사를 교회가 일생을 선교에 헌신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함께
선교의 주보로 정한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두 가지 형태의 선교가 있음을 교회는 이로써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몸으로 하는 선교,
직접 선교지역에 가서 행동으로 하는 선교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선교 지역에 직접 가지는 않지만 담장 안에서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삶과 기도로 하는 선교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지역에 가있지 않은 우리가 해야 할 선교가 바로 이것입니다.
거창하게 선교 지역에 가서 복음을 모르는 사람을 복음화하기 앞서
소박하게 먼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우리 이웃을 복음화하고
우리 이웃을 복음화하기 앞서 자신을 먼저 복음화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복음적인 사람은
데레사와 같이 소박하고, 어린이와 같은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어린이는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는 사람도 아니고
세속적으로 위대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의미에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도 아닙니다.
힘없고, 작고,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에 완전히 의지하는 존재인데
이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어린이는 남을 호령하거나 자기 좋을 대로 하지도 않고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하고, 이렇게 착하기에 좋은 것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가 좋은 것을 주시리라 완전히 신뢰하고 맡깁니다.
그래서 안 줄까봐 걱정하지도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내일을 걱정하며 축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사랑만을 갈망하고, 그 사랑에 머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놀다가도 엄마가 없으면 울며 엄마를 찾습니다.
건방지게 자기가 사랑하겠다고 하지 않고
사랑을 갈망하고 주시는 사랑을 잘 받습니다.
어린 아이는 이렇게 사랑을 받아서 성장하고
이제 받은 사랑으로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한다기보다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무슨 큰 자선사업은 하지 못하고 그저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그들도 사랑하시도록 맡기며 기도합니다.
데레사는 사랑을 위해 순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창하게 순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핀 하나를 희생으로 줍고
의자에 앉을 때 등을 기대지 않고 희생하는 것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희생을 사랑을 위해 바침으로 순교할 뿐 아니라
담장 밖 죄수나 지구 반대편 이교도를 위해 바침으로 선교하였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것이 그에게는 선교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위해 희생으로 순교하고
사랑 때문에 기도로 선교한 소화 데레사 성녀에게서
우리는 오늘 우리도 선교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삶 안에서 그리고 기도 안에서 선교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