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께서는 오늘 잃은 이들을 찾아오셨다고,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잃은 이는 죄인입니다.
잃은 이가 죄인이기에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는 것이지요.
잃은 이가 죄인이 아니라면 왜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보통 잃어버렸다고 할 때
귀하고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렸다고 하지
하찮은 것이나 싫어하는 것은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리지 않고 잃어버리기 전에 먼저 버려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하거나 좋아하는 것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고
그런데 그럼에도 잃어버렸을 경우 애타하며 찾게 되지요.
그렇다면 사람의 경우, 죄 지은 사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죄 지은 사람을 우리는 좋아합니까? 귀하게 여깁니까?
여기 강간범과 흉악범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좋아합니까?
재범 3범으로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사람을 우리는 채용합니까?
그 정도는 아니어도 자기만 아는 얄미운 사람을 우리는 가까이 합니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싫어하고 그래서 멀리하거나 내쫓거나 합니다.
그런데 첫째 독서 지혜서의 하느님은 당신이 만드신 사람을 싫어하지 않고
복음의 주님께서는 누구나 멀리하는 자캐오를 찾아가고 그 집에 머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하느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제 생각에 우리는 좋은 것을 좋아하고,
하느님께서는 존재, 특히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좋은 것은 소유하고 싫은 것은 버려 버리는데
하느님께서는 싫고 좋음이 없이 사랑하시기에 어느 것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은 죄인일 뿐인데
하느님께는 죄 지은 사람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인데
하느님께는 수천 번 죄를 지었어도 인간이지 영원한 죄인이 아니며
그래서 죄 지을 수 있는 죄인이지만 안 지을 수도 있는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은 똥 묻은 다이아몬드를 더럽다고 버리지만
하느님께서는 똥 묻었어도 다이아몬드이기에
더러운 부분을 닦아내기만 하면 된다 하시고
우리는 더러우니 닦으라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닦아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더럽다고 버려버린 것을
잃어버렸다고 찾아 나서시고 찾고 나신 뒤에는 닦아주십니다.
베드로는 발을 닦으시려는 주님을 왜 그러시냐고 마다하지만
주님께서는 발 닦임을 마다하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시고,
더 나아가 너희도 다 나처럼 하라고 모범을 보이신 거라고 하십니다.
이제 좋은 것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시고
이제 버리는 것은 그만하고 잃은 것을 찾아 나서라고 하시며
하느님께서도 단죄치 않는 사람을 인간이 단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