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교회가 위령성월에 초하루에는 모든 성인의 날을 지내고
이렛날에는 위령의 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요.
전례력으로 마지막 달인 11월에는
우리가 자연스레 이 세상의 마지막, 곧 종말을 생각하고,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도 있음을 생각하며,
또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로 간 분들도 생각게 되지요.
그런데 저 세상에로 간 분들 중에서 성인들에게서는 덕을 보고
그렇지 못한 영혼들에게는 우리가 기도를 해줘야 한다는 거지요.
이는 우리가 산 이들 중에서 잘 된 이들에게서는 덕을 보고
잘못된 이들에게는 위안과 격려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래서 저는 올해 위령의 날에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자살을 생각하거나 자살한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왜냐면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주변에서도 많이 듣고
언론을 통해서도 자살 현상의 심각성을 자주 듣기 때문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들에 대해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숙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과거에 자살은
하느님께서 주시고 하느님께만 달려있는 생명권을
인간이 제 맘대로 끊어버리는 가장 큰 죄이기에
이런 죄를 범한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장례미사도 드려주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우리 인간의 단절이 하느님의 사랑마저 단절케 한다는 말인가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생명을 끊었다고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사랑을 거두시고, 그것도 영원히 거두신다는 말입니까?
우리 인간의 한 번의 결정과 행동이 영원을 결정하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결정이 내세에서마저 어찌 할 수 없게끔,
다시 말해서 어떻게 돌이킬 수 없게끔 내세마저 결정짓는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통공의 교리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과 저 세상은 자살 한 번으로 완전히 단절되고
하느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 어긴 것이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단절케 한다는 말입니까?
하느님께서는 한 번 노여우시면 영원히 우리를 저버리신다는 말입니까?
그 반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불은 영원히 타오르고,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며,
그러므로 하느님은 영원히 기다리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큰 죄와 많은 죄를 짓고, 자살까지 하였어도
우리가 당신 사랑에로 돌아오기를 영원히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가 영원히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이 지옥이고,
얼마간 하느님 사랑 밖에 있다면 그것이 연옥이고 연옥의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영원히 기다리시는 하느님 사랑에로 돌아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그러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자살한 사람뿐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불행한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