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여러분,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우리가 이해를 잘 하지 않으면
서로 반대되는 메시지를 주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무리 이로운 거라도 그리스도 외에는
모든 것을 해로운 것, 쓰레기로 여기라고 말하고 있고,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 주변에 있는 누가 쓰레기 같은 존재일지라도
그를 버리려고 하기보다는 소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서와 복음은 결코 반대의 가르침이 아니지요.
무엇이 아무리 좋고 유익한 것이라도 그것에 애착이 가거나 욕심이 난다면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그것을 더 좋고 이로운 것으로 내가 여긴다면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쓰레기로 여기라는 말씀이고,
반대로 누가 너무 싫고 더 나아가 미워져서 버려버리고 싶다면
물건은 싫으면 버려도 되지만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개를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고,
돈이나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자주 일어날지라도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람을 무엇보다 사랑하고 싶어 하고,
또 실제로도 사람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을 미워할 정도로 사랑하는데
그것은 싫어도 버릴 수 없기에 미워하면서도 데리고 살지만
개나 고양이는 미워하지도 않고 미워하면서도 데리고 살지 않고,
물건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싫으면 미련 없이 버려버리고 말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중에서 싫어하는데도 굳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 어떤 것이든 애착할 때는 가지고 있지만 싫어지는 순간 쓰레기가 되고,
쓰레기는 즉시즉시 버려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중에서 싫어하는 뱀과 사는 분이 계십니까?
싫어하는 뱀을 굳이 데리고 살면서 미워합니까?
뱀은 싫어하고 두려워하지 미워하지 않지요.
뱀이나 개는 미워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워하면서도 데리고 사는 남편이나 아내는
얼마나 가치가 있고, 얼마나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말썽을 부리고 결국 가출을 해버렸어도 그 놈의 자식
앓던 이 빠졌다고, 오히려 잘 됐다고 하며 찾지 않을 부모가 있습니까?
물건은 싫으면 버려도 됩니다.
동물은 데리고 살던 것을 버려서는 안 되지만
요즘 데리고 살던 반려동물을 버리는 일이 많이 벌어지지요.
그런데 사람의 경우는 그 관계가 물건이나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요.
좋아하고 그래서 소유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얘깁니다.
미워는 할지언정 무관심하거나 버려버려도 되는 그런 관계여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런데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뱀이나 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것이고
인간을 사물화事物化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이러해야 한다면 하느님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요?
사람과의 관계보다 한 차원 높아야겠지요.
그럼에도 하느님을 사람보다도 더 하찮고 우습게 여기고,
그래서 사람은 애착을 하고 미워는 해도 하느님은 애착도 미워도 않고,
그래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며
오히려 돈과 물질을 신으로 받드는 물신주의자物神主義者들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느님보다 애착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쓰레기처럼 여기라!
쓰레기처럼 보여도 이웃을 자신처럼 그리고 하느님처럼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