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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6.11.06 06:39

연중 제32주일

조회 수 812 추천 수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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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할 때

 자칫 잘못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오늘 복음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분이시다보니

 그러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생각이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내 옆에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저 하늘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시는 하느님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느님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내가 편안할 때는 쉽게 하느님을 찾을 수 있지만,

 고통의 순간에, 죽음의 순간에

 하느님은 그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자신을 버리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 십자가 고통에 함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하느님의 모습을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곁에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하기 보다는

 가급적이면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합니다.

 자칫 이러한 생각은,

 내 행동 하나 하나를 감시하시는 하느님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더 숨 막히고 답답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점점 더 무서운 하느님,

 무자비한 하느님으로 그리게 됩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자비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성경이 이야기 하는 정의도 사랑이 바탕이 되어 나타납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하나의 폭력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모습 다 인간적인 나약함에서 비롯된 일들입니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 우리의 한계와,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고는

 그 사랑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다보니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생각보다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생각이 더 큽니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한계 때문에

 다시 하느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옆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존재이기를 희망합니다.


 복음서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임마누엘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승천에 앞서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함께 하시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이심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이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믿음이 그것을 온전히 믿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문득문득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사랑을 다시 떠올리고,

 그 기억을 반복하는 순간

 내 안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오늘 하루도

 그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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