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런 묵상을 하게 합니다.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감독될 사람에 대해서 말하면서
흠 잡힐 데 없는 사람이어야 된다고 하는데 흠 잡힐 데 없는 사람이란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고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 아니고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며,
-손님대접 잘하고 선을 사랑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교만하여 까딱하면 화를 벌컥벌컥 내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고
술에 절어 살면서 툭하면 아내를 때리고 아무하고나 싸우는 사람이나
탐욕이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겸손하고 상냥하고 선을 실천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많으며
가르침 받은 바를 굳건하게 실천하는 사람이어야겠지요.
그런데 저는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도
더 되고 싶은 것이 티토에게 바오로 사도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늘 남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구원에 이바지하는 사람, 그 정도는 못 되더라도
뭐 하나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픈 거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남을 죄짓게 하지나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저는 남에게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제게 너무도 주제넘고 어쭙잖은 것이지요.
유익이나 도움이 되기는커녕 남에게 죄나 짓지 않으면 다행이고,
더 나아가서 남을 죄짓지 않게만 해도 무척 다행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죄를 집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느냐고 하면서
사랑을 하다보면 사랑의 불순물이 없을 수 없어서 죄도 짓는 거라고.
또는 죄 짓는 것이 두려워 아무 것도 못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다가 죄 짓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이렇게 저는 자주 사랑을 빙자하여 제가 죄짓는 것을 합리화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랑을 빙자하여 남을 죄짓게 하는 겁니다.
내가 남에게 죄짓는 것보다 남을 죄짓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면 제가 남에게 화내는 것보다 남을 화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그러면 왜 남을 죄짓게 하는 경우가 더 많고, 왜 그게 더 큰 문제입니까?
그것은 웬만큼 둔하지 않는 한 내가 남에게 화를 냈다는 것쯤은 알지만
남을 화나게 한 것은 대부분 내가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는 멋지게 사랑했는데 남을 죄짓게 한 것이고,
나는 사랑만 하고 화내지 않았지만 남은 화나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저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랑이 사랑일까요?
내게는 사랑이지만 그에게는 사랑이 아닌 것이 아닐까요?
나는 사랑을 한 것인데 그가 죄를 지었다면 그건 그의 문제라고,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실제로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속이 배배 꼬여서 그런 사람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고 정말 나의 교만과 부주의 때문에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하고 잘 식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