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하느님이 시키신 대로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으로서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너무 심한 말처럼 느껴지고
더 나아가 잘못된 말씀처럼도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고 나서
수고했다거나 잘 했다는 칭찬을 들으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쓸모없는 종이라고까지 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말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교만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제가 교만하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쓸모없는 종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도 욕되는 거라 생각하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면 하느님께서 나를 그렇게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종종 왜 나를 이리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셨냐고 따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쓸모없는 종은 다른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요?
우리는 종종 하느님께서 쓸모 있게 만드셨음에도
왜 나를 이렇게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만드셨냐고 하면서
스스로 자기를 평가절하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핑계를 댑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쓸모없는 종이고 해야 할 바를 했을 뿐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명을 자기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쓸모없고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과 신뢰를 느끼는 사람이고
그 사랑 받기에 턱없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코자 하는 열망이 큰 사람입니다.
맡겨진 사명이 막중하다고 생각하고 열망도 큰 만큼 내가 더 많은 일을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열망만큼 하지는 못했다 생각하는 거지요.
프란치스코는 생을 마치면서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니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어찌 성 프란치스코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그처럼 대단한 일을 한 사람 없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성녀 글라라도 자신을 쓸모없는 시녀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당한 몸종이자 다미아노 수도원의 쓸모없는 시녀”라고
글라라는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인들이라야 주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을 쓸모없는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쓸모없는 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만이 스스로 쓸모 있다고 하지요.
자기가 쓸모없다고 생각되면, 특히 다른 사람이 너는 쓸모없다고 하면
무어져버릴 사람만이 쓸모 있다고 강변을 하는 것입니다.
무너져 버리지 않기 위해서.
나는,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