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오늘 드신 비유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저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픈 얘기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는 것을 꼭 들어주실 거라고 믿어라
-꼭 들어주실 거라고 믿는다면 낙심하지 마라
-낙심치 않는다면 포기치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거겠지요.
그런데 비유의 과부는 이해하기에 따라서는 떼쟁이처럼 보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욕심이 너무도 강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악다구니를 치고
얻게 될 때까지 끈질기게 떼를 쓰는 그런 대책 없는 과부 말입니다.
요즘 저는 어떤 분 때문에 시달리고 있고 은근히 마음 괴롭습니다.
제가 보호자로 되어 있는 분이 어느 시설에 계신데 정신이 온전치 않아
한 달 전에 다녀왔고 지난 주 다녀왔는데도 또 오라고 조르시는 겁니다.
다녀오면 하루가 다 깨지는 거리인데 말입니다.
매일 전화가 와서 ‘그런 전화할 거면 다시는 전화하지 마라.’하였지만
그제도 어제도 전화가 계속 오니 안 받으려다가 받기를 반복하고
가야 돼야 마나를 반복하여 고민하면서도 가지 않고/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상황과 처지를 생각하면 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그분의 어머니라면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저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갈 수 없다고 매정하게 끊어버리다가도
그분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안 가는 것이 무척 죄스럽습니다.
사실 감옥살이 같은 시설에 그렇게 오래 사는 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비유의 뜻은 저 같이 자기중심적이고 사랑 없는 사람도
끈질기게 졸라대면 마음이 흔들리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도 하는데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청하는 이의 고통을 너무도 잘 이해하시고
청하는 것을 반드시 들어주실 거라는 얘기이며,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이것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께서 들어주면 안 되는 것까지 들어주시고,
우리가 청하면 즉시 들어주시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들어주면 안 되는 것은 안 들어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저와 다른 점입니다.
저는 사랑이 없지 않지만 저의 사랑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들어줘서는 안 된다고 한 편 생각하면서도
사랑이 없어서 안 들어주려는 것은 아닌지 다른 한 편 미심쩍어 하지요.
그래서 결국은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기 위해서 들어주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기 위해 들어줘서는 안 되는 것을 들어줍니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지만 친모라면 자신 있게 들어주지 않을 것을
계모는 계모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들어주는 것과 같은 거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당신 사랑에 자신이 있으시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들어주시기도 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안 들어주시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없는 자신의 사랑을 하느님께 투사하여
하느님의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의심이 발전하여 낙심하고 급기야는 청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는 나의 사랑 때문에
의심이 낙심이 되고 마는 우리의 믿음을 성찰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