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오늘 비유에서 주님께서 악하다고 한 종은
우리가 보통 악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짓을 한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통 이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
다른 사람을 못살게 괴롭히는 것.
사기를 쳐서 다른 사람은 망하게 하고서 자기는 떵떵거리며 사는 것.
이런 사람 정말 나쁜 사람이고 그러니 악한 것 분명하지요.
그리고 이런 사람이 너무도 많으니 이런 짓을 안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착한/선한 사람이라고 하고 적어도 악하다고는 하지 않지요.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주님의 악한 기준은 우리와 다릅니다.
우선 그 기준 자체가 사람관계가 아니고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관계에서 나쁜 짓 하지 않은 것으로 악한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 착한/선한 일을 많이 했어도 악한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우선 하느님을 악한 분(냉혹한 분)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악입니다.
비유에서 악한 종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사실 악한 사람은 악한 것만을 보는 사람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선을 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을 같이 지니고 있는데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악도 보지만 선을 볼 줄 아는데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많은 선에도 불구하고 악밖에 못 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만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다른 사람을 그렇게 보기 전에 자신을 그렇게 보고,
하느님마저도 자기 안에 있는 악의 눈으로 보기에 악하게 봅니다.
다음으로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을 소홀히 하거나
소극적으로 하는 것이 또 다른 악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실패할까봐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왜 이 모양으로 했냐고 타박 들을까봐 아무 것도 않는 것,
이런 것이 하는 짓마다 악한 짓하는 것 못지않게 악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제쳐놓고 얘기해도
인생 최대의 실패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실패이고,
일의 잘잘못을 떠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큰 잘못이지요.
부모에게는 자식이 이거든 저거든 뭔가 하려고 해야 하는데
도무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제일 속이 터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보다도 더 결과를 보지 않고 과정을 보시며,
성공을 원하시기보다 충실과 사랑을 원하십니다.
어제는 저희 프란치스칸 수도가족인 ‘마리아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의
창립자 마리 드 라 빠시옹의 축일이었고 그래서 그 미사를 제가 드렸는데
그분의 가르침 중의 하나가 늘 저의 생활지침이 됩니다.
우리의 목적은 성공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실패이고,
실패 중의 실패가 사랑을 하지 않는 거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나의 악과 나의 실패는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