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의 행위와 말씀은 몇 가지 질문을 하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왜 우셨을까?
당신 민족이 망하게 된 것에 대한 슬픔 때문인가?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는 것은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하시는데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배척한 것에 대한 응징으로 망하게 하신 것일까?
우선 예수님의 눈물이 민족주의자의 눈물일까요?
당신 민족이 망하는 것에 대한 슬픔의 눈물일까요?
안중근 의사는 이등박문을 조선의 독립만을 위해 죽인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이등방문을 죽인 이유로 15가지를 제시하는데 그중 하나가
거짓 동양평화론으로 이등박문이 동양평화를 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러했을 진데
모든 민족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민족주의의 포로가 되셨을 리는 없겠지요.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유대민족만의 중심으로 생각지 않으셨고
모든 민족이 그리로 모여드는 천상 예루살렘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뜻이 <평화의 도시>인데 그 이름처럼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천상적 평화의 도시가 되기를 바라셨는데
그런데 예루살렘이 그 평화의 길을 모르고 딴 길을 감으로써
파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시는 겁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비단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만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이고, 미국의 수도 워싱톤이기도 한 거지요.
그리고 하느님이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했다는 말씀의 뜻도,
그 때를 알지 못했기에 망했다는 말씀도 다르게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가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기저기에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그때를 뜻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찾아오신 그때가 하느님이 찾아오신 때인데,
여기서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오실 때를 미리 알지 못했다거나
하느님께서 오셨던 때를 늦게라도 알지 못했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오신 때를 알지 못했다고만 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찾아오실 때를 미리 알고서 대비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깨어있지 않으면 하느님이 오셨을 때 즉시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고,
그래서 늦게 알게 되었더라도 너무 늦지만 않아도 큰 문제없을 겁니다.
그런데 보통 난리가 나고, 폐허가 되고 나서야
그때 하느님께서 오셨던 것이구나 하고 알면 그것이 큰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놓고 보면 이 정권의 문제에 대한 예언적인 경고들이
대통령 선거 전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있었지만
국민들은 일이 벌어지고 이 난리를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평화로울 때 평화로운 현존의 하느님만 느끼고
그래서 평화를 위한 예언적인 현존의 하느님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예언자들이 불의를 고발할 때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인 줄 모르고,
그들을 빨갱이, 분열주의자, 반대주의자 등으로 몰아 죽이듯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평화의 하느님이지만 정의의 하느님이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정의를 통해 평화를 가져다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정의를 알리려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를 알아보지 못하면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