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는 뜻이 무엇인가?
세상의 임금들과 경쟁하듯 우리도 임금을 갖자는 것인가?
주변 이민족들이 임금을 갖고 있을 때 임금이 없던 이스라엘은
자기들도 임금을 갖게 해달라고 사무엘에게 졸랐는데
그런 것처럼 우리도 그런 임금을 갖자는 것인가?
절대로 그런 뜻일 리 없고, 그런 뜻일 수는 없는 거지요.
오히려 세상의 임금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 왕처럼 세상을 다스리라는 것이지요.
세상의 통치자들은 남의 피를 흘리면서 권력을 잡는데
그리스도 왕께서는 당신의 피를 흘려 세상을 구원하시고,
세상 임금들은 정신적, 신체적 고문을 주며 권력을 유지하는데
그리스도 왕께서는 당신의 상처로 상처 받은 사람들을 낫게 하시며,
세상 임금들은 자기 국민이 죽고 실종돼도 아무 조처 취하지 않는데
그리스도 왕께서는 한 마리 양도 잃지 않으려 산과 들을 헤매시는 분임을
얘기하며 세상의 임금들, 통치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십자가 제대 위에서,
티없는 평화의 제물로 당신을 봉헌하시어 인류를 구원하시고,
그 영원하고 보편된 나라를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께 바치셨나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온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 이렇게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가 되는 것까지 바라지는 못해도
진리와 생명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우리나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리와 생명이 아니라
거짓과 죽음이 횡행하는 나라입니다.
옛날에는 전쟁이나 전염병 때문에 많이 죽고 가난 때문에 많이 죽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 없고, 전보다 부유해도 돈 때문에 많이 죽고 많이 죽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특히 젊은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정동에서 혼배미사가 있어서 주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연스레 광화문 집회 현장에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던 중고생까지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데, 그 아이들이 대통령의 이름을 날로 부르며
하야를 외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른으로서 마음 씁쓸하고 착잡하여
왜 이리 되었을까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불러낸 것은 자기들은 그렇게 경쟁하며 힘들게 사는데
누구는 권력의 비호로 온갖 특혜를 누리고 또 그것을 자랑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의 상대적인 상실감과 박탈감이 분노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공정한 경쟁이어도 경쟁은 힘들고 더 나아가 죽을 만큼 괴로운 것입니다.
시험을 잘 못 봤다고 자살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는데 시험에서 떨어지고 경쟁에서 처질 때 아이들은
다가올 인생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많은 탈북자들도 그렇습니다.
자유와 풍요를 찾아서 탈북하고 한국으로 왔는데
이곳에서의 삶이 더 불행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북에서는 없어도 똑같이 없고 이웃 간에 정과 사랑이 있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상대적인 빈곤과 무한 경쟁이 있기에
그 자유로움과 그 풍요함이 행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이 된 것입니다.
사실 자유라는 것과 풍요라는 것이 정의(공정)와 사랑에 밑바탕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행복을 보장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경쟁-무한경쟁-불공정경쟁-살인경쟁이 되게 하여 불행케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우리를 <참 자유>하게하고, 사랑이 풍요를 나누게 하기에
사랑만이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것임을
사랑의 임금이신 그리스도 왕 축일에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며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우리도 사랑의 왕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