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합당한 거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고 주장하는 오늘의 축일을 지내며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오늘 축일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도 우리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셨지만 죄는 짓지 않으셨다는데
주님께서는 정말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셨고,
또 죄를 짓지 않으셔야만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 있다는 것인가?
주님에 대해서도 이런 무엄한 생각을 하는데 하물며
마리아께서 아무리 주님의 어머니라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는지,
죄 없으신 어머니가 되기 위해 꼭 원죄 없이 잉태되셔야 하는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도 죄가 없고 너도 죄가 없기를 바라는 우리이니 마리아는
더욱 죄 없어야 하고 주님은 더더욱 죄 없어야 한다는 거겠지요.
그런데 주님이나 어머니가 정말 한 번도 죄 짓지 않으셨는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죄 짓지 않으셨다고 믿는 것이지.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확고하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뜻에 불순종하는 죄, 곧
하느님 구원계획에 거역하는 죄는 짓지 않으셨을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죄 없이 잉태 되신 마리아의 축일을 지내는 것도 이런 뜻입니다.
마리아께서 잉태되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있었는데
그 구원계획이란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그 어머니가 되셔야 할 분을
하느님께서는 청지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하셨다는 것이 이 축일의 뜻이지요.
그런데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는 계획, 곧 선재계획先在計劃은
비단 성모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에게도 해당된다고
오늘 2독서의 에페소서의 그리스도 찬가는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1,4-5)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창조계획과 함께 구원계획을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천지창조 이전부터 갖고 계셨는데
그중의 한 분이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창조계획과 구원계획은
한 마디로 달리 얘기하면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인 것이지요.
하느님의 사랑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하게 창조하시고,
그 역할도 고유하게 주시며, 그 구원도 고유하게 이루시지요.
사람마다 언제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구원하실지 계획이 있으신데
구원계획에는 인류전체를 위한 보편적인 구원계획과
각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구원계획이 있으며
보편적인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육화계획을 세우셨으며
앞서 얘기했듯이 그 어머니 되실 분에 대한 계획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런 구원계획에 대한 우리 인간의 응답입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있어도 우리 인간이 그 계획에 순응하지 않거나
거역하면 하느님의 구원계획도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구원계획이란 사랑의 계획이기에 강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편적인 구원계획까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요.
성자께서 육화하시는데 어머니 되실 분이 그 계획에 거역하시면 안 되고,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어머니 마리아는 그 계획에 순종하셔야만 되겠지요.
이 보편적 구원계획에 순종할 어머니로 하느님께서 미리 창조하셨다는 것이
우리가 오늘 지내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축일의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오늘 이렇게 묵상을 했는데
여러분은 이 어려운 신비를 어떻게 묵상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