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247 추천 수 3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은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이를 채찍질하신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히브리서 말씀에 대해 저는 이렇게 다시 반문하고 싶습니다.

히브리서여, 아버지의 훈육을 아들이 받는 것을 당연한 듯 얘기하는데

훈육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실제로 얼마나 됩니까?’

 

실로 우리는 아버지의 훈육을 책망으로만 여기고

시련을 벌로만 여길 뿐 훈육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는 별로 책망을 많이 받지 않았고

시련을 많이 받지도 않았지만 시련을 벌로 생각한 적인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양성책임자나 원장이나 관구장의 직무를 오래 수행했기에

저는 충고나 책망을 오히려 많이 한 편이지요.

 

그래서일까, 훈육을 훈육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충고를 충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책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

왜 그렇게밖에 못할까 많이 안타까워했지요.

 

그러나 제 생각에 더 문제는, 아니 더 근본적인 문제는

훈육을 책망으로 여기고, 시련을 벌로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책망이건 훈육이건 시련이건 벌이건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 미움 때문에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느님의 사랑까지도 의심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몰라도 어찌 하느님의 사랑까지도 의심할까요?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라면 악마이고 하느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님 말씀하시듯 인간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것을 알거늘

어찌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쁘고 해로운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까?

 

이치적으로(이성적으로)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경험의 왜곡 때문입니다.

 

경험의 왜곡?

, 경험의 왜곡 때문입니다.

 

우리 또는 우리의 아버지가 정말 독선적으로 책망하거나

홧김에 할 말 못할 말을 퍼붓거나 한 경험이 있었다면,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사랑으로 했지만

그 사랑에 약간의 분노가 불순물처럼 있었다면

이 경험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도 그럴 거라고 오해를 한다지요.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하느님도 무서운 분,

벌주시는 분으로만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하고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느님을 왜곡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왜곡하게 하기도 하고

하느님을 매개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매개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매개자입니까, 왜곡자입니까?

이걸 깊이 묵상하고 성찰하는 오늘이 됩시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7Dec

    대림 1주 목요일-어디를 들어가려는가, 나는?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공통어는 <들어간다.>입니다. ...
    Date2017.12.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77
    Read More
  2. No Image 06Dec

    대림 1주 수요일-산 위에서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오늘 독서와 복음은 판박이입니다. 산위에서 온갖 치유가 이뤄지고 배불리 먹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렇게 판박이 얘기를 ...
    Date2017.12.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17
    Read More
  3. No Image 05Dec

    대림 1주 화요일-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들리른 대로 듣지 않는,

    오늘 이사야서는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는 어떤 분이고, 그분과 함께 도래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희망에 차 노래합니다.   이사야서는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올바른 판결을 하시는 분으로 그리고 무뢰배와 악인은 가차 없이 처단하시는 분으로...
    Date2017.12.0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89
    Read More
  4. No Image 04Dec

    대림 1주 월요일-주님은 우리 집안에 계신가, 밖에 계신가?

    오늘 대림절의 첫 날 첫 독서는 이사야서이고 한 구절이 이렇습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대림절 첫날 첫 독서로 이것을 읽을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을 기다...
    Date2017.12.0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366
    Read More
  5. No Image 03Dec

    대림 제1주일

     새 해 첫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은  '깨어 있어라'입니다.  깨어 있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잠자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은  눈을 감고 있음을 의미할텐데,  우리는 무엇에 눈을 감고 있나요?  사람 ...
    Date2017.12.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44
    Read More
  6. No Image 03Dec

    대림 제 1 주일- <과거 사랑>이 되지 않도록 사랑의 타성을 경계해야지.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제 저녁 기도 때 묵상을 하다가 문득 ‘내일저녁부터 대림절이 시작되지’ 하는 생각이 들더니 이내 옛날 제가 애창...
    Date2017.12.0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265
    Read More
  7. No Image 02Dec

    연중 34주 토요일-주님 앞에 서는데도 힘이 필요한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는 오늘 주님 말씀에서 ...
    Date2017.12.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448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63 764 765 766 767 768 769 770 771 772 ... 1354 Next ›
/ 135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