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24.10.31 11:06

죽음의 트라우마 (2)

조회 수 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죽음의 트라우마 (2)


1

너댓살 가량 되었을 무렵,
할머니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심하지 않으셨을 때의 일이니,
이제 소개하려는 죽음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는
아마도 서너 살 즈음에 일어난 것 같다.

2

할머니는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를 낳으셨고
할아버지는 막내인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니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추억은 그야말로 하얀 백지였을 것!

궁핍함 속에서도 할머니는 세 딸 중 하나를 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시키셨으나,
불행히도 결핵 환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사별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결핵에 감염되어
친정에서 병치레를 하다 그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3

할머니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큰 아들이 결혼을 하여 결핵을 앓던 딸의 방에 신방을 차렸는데,
아뿔사, 그 방에 결핵균이 남아 있었다는 것!

이야기 그대로, 신방을 차린 후 그 방에서 감염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 전에 이미 감염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나,
추측컨대 후자일 가능성이 더 많겠지만,
어찌되었든 기구하신 할머니는 큰 아들도 결핵으로 잃게 된다.

4

어린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데다
장성하여 결혼한 딸과 아들을 연달아 잃게 되자
할머니는 이제 하나 남은 막내아들마저 결핵에 걸릴까 두려워
큰 아들을 미리내 오지로 요양을 보내 놓고는 장례 때도 들여다 보시지를 않았다니…

어머니와 아내, 동생과 두 누이들을 그리워 하다 고독하게 죽어간 큰아버지의 쓸쓸한 고독함이며,
결핵으로 가엾게 홀로 죽어가는 큰아들을 찾아볼 수 없었던 할머니의 저 참혹한 심정에랴!

참척이라 했던가!
칼로 심장이 찔리는 고통을 겪으셨을 가엾은 할머니!

5

그런 사연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오신 할머니인지라,
맏손주인 나에게 쏟았던 각별함은 유별났었던 모양이다.

혹독한 가난과 쓰라린 궁핍으로 인해
맏손주에 대한 사랑이 더 극성스러우셨던 할머니에게
그러나 경을 칠 일이 일어났다.

보리쌀로도 끼니를 때우기 어렵던 시절,
초여름의 어느 날,
귀하디 귀한 쌀밥이 어떻게 생겨
할머니도 드리지 않고 나를 주었더니,
마루 끝에 차려진 밥상에 앉아
무슨 수가 틀렸는지
자꾸 투정을 부리다가는
그 귀한 밥을 냅다 마당에 내동댕이쳐 버렸다는 것!

데구르르 굴러가던 밥그릇은
결국 밥 따로 그릇 따로 굴러
아무도 못 먹고 생으로 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이겠는가?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어머니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번쩍 들어 광에 집어 넣고는
문을 열쇠로 꼭 걸어 잠가 버렸다.

6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무서운 공포감에 질린 나는 문고리에 착 달라붙어서는

"엄마, 안 그럴게!"
"엄마, 안 그럴게!"

자지러지게 소리질렀다.

갖가지 농기구와 연장들로 가득 차있던 그 광은
무슨 광이 창문 하나가 없어
문만 닫히면 빛 줄기 하나 없는 깜깜 절벽이다.

7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할머니가
득달같이 달려 와서는

"울지마, 울지마!
할머니가 열어 줄게"

아직도 아련히 울려오는
할머니의 간절하고도 다급한 저 음성!

문 밖에서 딸그락거리는 소리에
울음을 멈추고 나는 문에 착 달라 붙어 문이 열리기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이구 안 열리네"
할머니의 답답한 한숨과 함께
딸그락 소리가 멈춘다.

문이 꼭 열리리라 기대했던 나는
다시 엄습해 오는 무서움에
소리소리 지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열쇄를 구하지 못한 할머니는
겁에 질린 손주의 외마디 소리에
얼마나 안절부절 애가 타셨을까!

8

조금도 잦아들지 않는 경악의 소리!
절박해진 할머니가
다시 빈손으로 달려와 딸그락거리며 달래신다.

나는 또 다시 울음을 멈추고
여전히 불안감에 싸여
문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했지만
이번에도 할머니는
"아이구 안되네!"
맥없는 소리뿐이다.
나는 또다시 공포에 휩쓸려 울부짖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이 열렸고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나갔다.

잠깐 사이
온 몸에 땀이 쪽 흘렀고
물에 빠진듯 흠뻑 젖었다.

서너 살 나이의 어린 나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1. No Image NEW

    죽음의 트라우마 (2)

    죽음의 트라우마 (2)리더 1 너댓살 가량 되었을 무렵, 할머니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심하지 않으셨을 때의 일이니, 이제 소개하려는 죽음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는 아마도 서너 살 즈음에 일어난 것 같다. 2 할머니는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를 낳...
    Date2024.10.31 By고파울로 Reply0 Views9 new
    Read More
  2. No Image

    죽음의 트라우마 (1)

    죽음의 트라우마 (1) 1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뱀의 트라우마에 시달렸을까? 저 밑에 움크리고 있었던 트라우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과 뱀의 형상이 뒤엉켜 있는 것 아닐까? 그동안 뱀의 트라우마 이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Date2024.10.20 By고파울로 Reply0 Views30
    Read More
  3. No Image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10)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10)-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10) -밤마다 눈을 감으면온 의식을 가득 채웠던 뱀들이얼키고설켜 꿈틀 꿈틀 꿈틀소름이 끼쳐잠을 설쳐야 했던 나날들그 얼마나 많았던가그랬던 트라우마가 치유되며카로가 더불어 산화된다.의식을 ...
    Date2024.10.08 By고파울로 Reply0 Views40
    Read More
  4. No Image

    쓰레기

    쓰레기"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 23,27-28).           1 의식이 깨어 있는 국민들은 안다, 적잖은 기자가 쓰레기라는 것을! 개혁하는 정치가들...
    Date2024.09.04 By고파울로 Reply0 Views119
    Read More
  5. No Image

    황금빛 노란 색 뱀 이야기 (9)

    황금빛 노란 색 뱀 이야기 (9)     - 황금 궁궐 - 은빛 찬란한 세계가 사라지고 황홀한 빛이 온 몸을 휘어감는다. 온 마음이 황금 빛으로 빛나고 가슴과 심장이 금빛으로 물든다. 온 의식과 온 존재 온 누리와 우주 만물이 황금 빛으로 출렁인다. 온 우주가 황...
    Date2024.08.27 By고파울로 Reply0 Views92
    Read More
  6. No Image

    법주사에서

    법주사에서         1 새벽 네시 반 속리산 법주사 범종각의 법고가 두둥~ 두둥~ 두둥~ 둥둥둥~ 새벽 산사의 고요 속으로 울려 퍼진다. 거룩한 초월의 소리가 장대비처럼 온 몸과 마음 속으로 쏟아져 내린다. 길짐승, 물고기, 날짐승 등 산천초목의 온갖 생명...
    Date2024.08.20 By고파울로 Reply0 Views76
    Read More
  7. No Image

    생명의 빵

    생명의 빵"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48).황홀한 신비는나의 성소요나의 혼나의 누이요나의 신부황홀한 신비는황홀한 나의 아모르황홀한 아모르를향기로운 제물로 봉헌하옵니다.
    Date2024.08.11 By고파울로 Reply0 Views82
    Read More
  8. No Image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8)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8)      황금 유리알 가슴 뒤틀리고 소름이 돋던 기괴한 뱀의 형상들이 사라지더니 영묘하게도 그 자리에서 황금 빛이 흘러나온다. 서녘 하늘을 황홀하게 물들이는 황금 노을처럼 온 몸과 마음을  신비로운 빛으로 적시는 황금의 물...
    Date2024.08.06 By고파울로 Reply0 Views65
    Read More
  9. No Image

    밀과 가라지

    밀과 가라지"그 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마태 13,43).          1카로(caro, 육)가 신비의 빛 안에서유리알 보석처럼 빛난다.무수한 작은 카로들은밤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고깊이 박힌 커다란 카로는황금관 중앙의 거대한 보석처...
    Date2024.07.30 By고파울로 Reply0 Views84
    Read More
  10. No Image

    불멸의 성 195

    불멸의 성 195마르틴 하이데거에 의하면,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 발생하는 존재이시다.그런데 불세출의 이 현상학자는, 이미 다른 여러 사상으로 오염된 기존의 신학 언어로는현재 발생하는 하느님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어,불가피하게 "현존재"(Dasein), "세...
    Date2024.07.25 By고파울로 Reply0 Views8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3 Next ›
/ 53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