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설날을 맞으며
1
먼동이 트기 전
설날 새벽 어둠 속에 지난 한 해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을 감사히 회고하며
새 날을 맞는다.
특별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
감당해 내기 벅차고 힘에 부쳐
불평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련을 통해
존재의 지평이 확장되었으니
은혜로운 일 아니런가!
지난 해 견디어 냈던 시련이 신비였고
그동안 부둥켜 안고 끌고 왔던 고통이 고결한 아름다움이었구나
일 년 내내 묵직하게 익어온
존재론적인 고통의 아름다운 신비!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또 있으랴
2
한 해 동안 수고해온
온 몸의 세포들
예순 중반에 들어서며 여기저기 몸에 이상이 생기고
이따금 불편이 뒤따르긴 했지만
큰 무리없이 하루하루를 지탱해 왔으니
묵묵히 수고한 세포 형제들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를 올린다.
날마다 체조를 하고 정좌 관상을 했던
온 몸의 지체들
그 수고를 일일이 기억하며 고마워 하자
온 몸과 마음이 감사로 충만해지고
전 존재가 감사가 된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감사가 흘러나오며
드넓은 허공 속으로 퍼져 나간다.
우주 전체가 존재론적인 감사가 된다.
온 몸이 진동하며 흔들린다.
처용이 춤을 추듯
천천히 양팔을 휘두르며
신비의 가락에 맞춰 감사의 춤을 춘다.
수도복 자락에 우주가 휘감기듯
초월의 나르드로 분향하며 우주적인 감사의 춤을 춘다.